"우크라전이 세계 방산지형 바꿨다…한국 수혜"
수요 증가 속 유럽·미, 냉전 이후 무기산업 조정
개발 계속한 한국, 가격·납기 무기로 9위 수출국
"韓, 몇년 내 세계 5위 무기 수출국 될 것"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양상이 치열한 지상전으로 변하면서 한국산 곡사포 등 무기 수요가 급증했다고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대거 공급한 미국 등 서방은 자국 군수산업이 바닥난 재고를 이내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한국이 빠른 납기일과 가격 경쟁력 등을 강점으로 이 재고를 채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WSJ은 한국 주력 무기인 K9 자주포를 생산하는 한화 에어로스페이스의 창원 공장을 찾아 한국 방산업계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같이 전했다.
냉전 이후 유럽과 미국의 군수업계 지형이 달라졌지만 북한을 적으로 둔 한국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생산량을 유지했던 점, 여기에 우크라이나전이 기폭제가 됐다.
19개월 전 발발한 우크라이나전은 이제 피 흘리는 소모전으로 접어들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빠른 속도로 탄약을 소진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역시 서방에 곡사포와 장사정포 지원을 요청했다.
이 중 155㎜ 곡사포탄은 우크라이나가 가장 필요로 하는 탄약으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155㎜ 포탄을 지원한 후 한국은 미국에 수십만개를 공급했다.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방산 수출국 중 하나다. 지난해 수출량은 전년의 2배에 달했다.
유럽과 미국은 냉전 이후 무기 산업의 우선순위를 조정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대규모 군사력이 필요한 지상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줄었다고 보고, 전차와 중화기 보유량을 줄였다. 예산은 전투기와 함정 구입에 쓰였다.
유럽은 탄약고도 줄이고 생산 역량도 줄였다. 원자재 확보도 줄이면서 탄약 대량 생산에 필요한 화학·전자 제품, 인력까지 부족한 상황이다.
니컬러스 마시 오슬로 평화연구소의 군비통제·군사지원 전문 선임연구원은 "군수공장 하면 수만 명이 일하는 대규모 공장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제는 최첨단에 소량 생산인 경주용 자동차 생산에 더 가깝다"며 "대량 생산하지 않았던 무기의 생산을 늘리려면 몇 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역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겪었지만,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에서 미군이 싸운 대상은 상대적으로 경무장한 세력이었다. 아프간에서 미군이 썼던 탄약은 하루 평균 수백발로,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하루에 소모되는 탄약 수천발에 비하면 극히 적다.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20세기 최대 재래식 지상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53년 휴전협정을 맺었지만 남북은 전투 준비를 멈추지 않았다.
재래식 무기 생산에서 북한에 열세였던 한국은 1980년대 자체 무기 개발에 나섰고 이후 지속적으로 제조 공정을 키워왔다.
미 스팀슨센터 재래무기프로그램 분석가 일라이어스 유시프는 "한국은 자국 군대의 요구에 맞춰 강력한 국방 생산 생태계를 유지해왔다"며 "안보 환경이 서방처럼 극적으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경쟁국에 비해 '복잡하지 않은' 정치환경이 시장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이 이스라엘, 튀르키예 등의 국가와 함께 무기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성장해왔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이 무기 교역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터키는 여전히 주요 수출국으로 부상하지는 못했다.
또 무기 구매국에 생산 공장 건립 지원, 기술 이전 등에 있어 '관대한' 편이다. 한화는 폴란드에 K9 자주포 공장을 지어 유럽 수출을 늘릴 계획이며, 루마니아와 영국도 K9 자주포를 구매할 예정이다. 지난 7월엔 독일을 제치고 호주 정부와 2조원대의 장갑차 계약을 따냈다.
K9 자주포는 독일제 자주포 PzH-2000만큼 성능이 뛰어나지는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폴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등은 기존 자주포를 우크라이나에 내준 후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 한국산이 가격도 거의 절반인 데다 몇 달 안에 납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 무기 시스템은 미국과 독일의 기술 이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폴란드와 같은 나토 회원들에게 이상적이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시에먼 웨즈먼 선임연구원은 역내 위협이 한국이 중동과 유럽에서 큰 방산 계약을 따낸 첨단 기술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도움을 줬다며, 이런 성과는 비유럽국에게는 어려운 성과라고 말했다.
웨즈먼 연구원은 "한국은 몇 년 안에 세계 5위의 무기 수출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SIPRI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2년 한국은 전세계 방산수출 시장에서 2.4% 점유율로, 9위를 기록했다. 직전 5년에 비하면 74% 증가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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