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가 강조한 '중국의 발전' 의미와 미·중 패권경쟁
美필스버리 "중국에 속았다" 이후 '중국압박' 본격화
바이든, 동맹과 함께 중국 포위 가속…한중 관계도 시험대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2018년 10월 4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보수성향의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과 관련한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은 이후 미국과 중국 간 '신냉전'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평가됐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인사말을 전한 뒤 곧바로 "저는 국민들께 진실을 밝히고자 합니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마치 중국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은 연설을 이어간다.
먼저 그는 "우리는 중국에 속았다"고 강조했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지했고, 중국의 개혁개방을 도왔지만 "중국은 자유와는 거리가 먼 나라가 됐다"면서 "미국은 이제 미국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긴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고 천명했다.
미중 관계의 획을 긋는 이 연설을 펜스 부통령은 왜 굳이 허드슨 연구소에서 했을까. 여기에 주목할 기관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중국 전략 센터(Center on Chinese Strategy)이고, 이 센터를 이끄는 사람이 마이클 필스버리다.
필스버리는 리처드 닉슨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역대 대통령들의 대중국 외교 전략을 자문했던 인물이다.
그는 2016년 3월 '백년의 마라톤(The Hundred-Year Marathon)'이라는 저서를 냈다. 원저에는 '미국을 제치고 글로벌 슈퍼파워로 등장하려는 중국의 비밀 전략(China's secret strategy to replace America as the global superpower)'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필스버리의 오랜 중국탐구의 결론이 바로 "미국은 중국에 속았다"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면 서구식 민주주의의 새로운 국가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미국과 서방세계가 중국을 힘껏 도왔지만 모두 허사이며, 오히려 중국은 그런 미국을 속였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지도자들은 마오쩌둥에서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1949년에서 2049년에 이르는 '100년의 마라톤'을 거쳐 반드시 미국을 제치고 세계 패권을 쥐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고 설파했다.
펜스의 허드슨 연구소 연설은 필스버리의 생각이 미국 행정부에 투영됐으며,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이 전환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장면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5월 21일 미국 백악관의 보고서(United States Strategic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를 통해 중국을 '미국의 가치(values)'를 위협하는 국가로 규정하고 전방위적 대중 압박에 돌입한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는 여기에 '민주주의 가치'를 고리로 동맹 및 협력국과 더불어 중국 압박·포위전략을 공고히 하고 있고, 미중 패권 경쟁은 오늘날 목도하는 대로 불꽃을 튀기고 있다.
그런 미국에 맞서 중국도 기민하게 대응했는데, 지난해 10월16일 중국공산당 당대회 업무보고 연설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국이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전면적인 샤오캉 사회의 필승으로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자'는 당대회 보고서에서 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이 되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사회주의 현대화'를 중국 공산당의 새로운 가치로 제시한 점이다. 과거 미소 냉전 대결에서 소련식 사회주의가 결국 자본주의에 패배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중국은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는 주장으로 평가됐다.
특히 중국 공산당이라는 거대 조직이 이끄는 중국은 첨단기술에서 미국에 앞설 만큼 발전했으며, 이는 현대화를 통해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를 이길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이런 중국 공산당의 역사 인식은 지난 16∼17일 몰타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난 왕이 외교부장의 입을 통해 재확인됐다.
그는 "중국의 발전은 강대한 내생적 동력을 갖고 있으며 필연적인 역사 논리를 따르는 만큼 저지할 수 없다"면서 "중국 인민의 정당한 발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중 정상회담이 오는 11월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미중 양국간 외교안보 책사 회동에서 나온 이 발언은 중국의 현 수뇌부의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은 세계 패권을 놓고 이념은 물론이고 첨단기술과 금융을 포함한 경제시장에서, 그리고 세계질서의 새로운 지향 등 모든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파고가 높아질수록 미국과 중국은 각각 동맹국과 협력국들을 동원한 세력 대결에 치중할 것이고, 그 여파는 한반도에도 밀려들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도 한미동맹을 기본으로 한 외교 축을 더욱 강화하면서 한중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시대적 과제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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