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어떤 차든 안전하도록"…車 부수고 배터리 떨어트리는 이곳

입력 2023-09-17 11:00
[르포] "어떤 차든 안전하도록"…車 부수고 배터리 떨어트리는 이곳

화성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실제상황 맞게' 안전시험 다양화

K-시티에선 자율주행차 '학습중'…교통안전 체험교육도



(화성=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쏘나타 한 대가 시속 80㎞의 빠른 속도로 약 200m를 질주하더니 삐딱하게 세워진 카니발을 정면에서 들이받았다.

굉음과 함께 무게 2t이 넘는 카니발이 뒤로 밀리며 120도가량 돌아 뒤를 향했다. 쏘나타 보닛은 완전히 찌그러졌고, 카니발 우측 앞부분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실제 교통사고가 아닌 지난 14일 경기도 화성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KATRI)에서 실시된 '차 대 차 부분 정면충돌' 시험 시연이었다.

앞으로는 이처럼 실제와 유사한 상황을 재연해 완성차 안전 평가의 신뢰성을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전기차 급증에 따른 차량용 배터리, 미래 모빌리티인 자율주행차에 대한 안전 시험도 이어지고 있다.



◇ 실제 사고 대비한 충돌 시험…4.9m 높이서 떨어지는 車배터리

자동차안전연구원은 자동차 충돌 시험을 위해 매년 30억∼40억원을 들여 신차를 구입, 100대 가까운 차량을 충돌 시험에 투입하고 있다.

기존에는 차량을 벽에 충돌시키거나, 시속 56㎞로 속도를 설정하는 방식의 시험이 주를 이뤘지만, 내년부터는 더 빠르게 달리는 차량이 충돌하는 다양한 사고를 가정한 시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렇게 이뤄진 시험 결과는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안전도 평가(KNCAP) 등에 활용된다.

이번에 찾은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는 배터리팩 낙하 시험도 볼 수 있었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한층 중요해진 '배터리팩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연구원은 지난 2009년 세계 최초로 배터리팩 낙하 시험을 시행하며 국내 안전 기준을 정했다.

시험은 포터 EV·봉고 EV에 탑재되는 무게 447㎏의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4.9m 높이에서 떨어트리는 방식이었다. 시속 35㎞로 콘크리트 바닥과의 충돌 시 화재 및 폭발 여부를 살폈다.

배터리가 '쾅'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지면서 먼지가 피어오르기는 했지만, 불꽃이나 연기는 발생하지 않았다.

연구원의 문보현 책임연구원은 "배터리 상용화 전 이런 시험을 수십 번 한다"며 "차량이 바다에 빠지는 상황을 가정한 염수 침수 시험, 주차 중 안전 시험 등 12가지의 시험을 거친다"고 소개했다.



◇ 실제 도로환경 옮겨놓은 K-시티…자율주행차 시험 한창

자동차안전연구원 안에는 자율주행차 전용시험장인 '케이시티'(K-City·자율주행실험도시)가 자리한다.

2018년 조성된 이곳은 36만㎡(약 11만평) 규모로, 자율주행 관련 기업인 삼성전자, 현대차·기아, LG전자, SK텔레콤, KT, 네이버, 카카오 등의 연구소·공장이 대부분 60㎞ 이내에 있어 연구개발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실제 도로 환경과 유사한 36종의 시설을 갖춰 자율주행차가 주행 중 부닥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시험을 할 수 있다.

도심의 사거리로 꾸며진 곳에서 시험이 한창이었다.

자율주행차 앞으로 다른 차량이 끼어드는 컷인(cut-in) 상황과 신호등이 빨간불인데도 무단횡단을 하는 보행자가 나타났을 때 얼마나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이었다.



'레벨 4'의 자율주행 시스템이 탑재된 제네시스 G80은 앞에 차나 보행자가 끼어들었을 때 사람이 운전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속도로 정지하고 방향을 바꿨다.

케이시티 최인성 연구처장은 "자율주행차의 인지·판단·제어 알고리즘이 고도화돼야 안전하게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다"며 "키가 크고 작은 보행자, 우비를 쓴 경우 등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반복 학습을 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케이시티 내에서 시속 60㎞로 달리는 자율주행 버스에 탑승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자율주행 솔루션 전문기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a2Z)가 25인승 버스 '레스타'를 개조해 만든 차량이다.

운전자의 조작 없이 고출력 레이저를 쏘는 '라이다' 장치와 5대의 카메라를 통해 신호등과 주변 차선, 횡단보도 등을 인식해 주행했다. 운전자는 '문제없다'는 듯 양팔을 번쩍 들어보이기도 했다.

<YNAPHOTO path='AKR20230916038800003_05_i.gif' id='AKR20230916038800003_0501' title='손을 떼도 잘 달리는 자율주행 버스(GIF)' caption='[촬영 임성호]'/>

◇ 빗길 제동·안전띠 착용효과 등 체험교육센터도

연구원 내에는 운전 중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위험 상황을 체험할 수 있는 '화성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도 있다.

주로 택시·버스 등 상용차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이뤄진다. 2017년 3월 개장 이후 지난해까지 13만2천877명이 이곳에서 교육받았다.

빗길 제동훈련 코스에서는 물에 젖은 도로에서 일반 브레이크만 있는 차량과, 브레이크 잠김 방지 장치(ABS)를 장착한 차량의 제동 거리에 차이가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YNAPHOTO path='AKR20230916038800003_08_i.gif' id='AKR20230916038800003_0801' title='빗길 제동훈련 코스(GIF)' caption='[촬영 임성호]'/>

안전띠 착용 효과 체험도 이뤄졌다.

연구원 관계자는 "통계를 보면 안전띠를 안 맸을 때 부상률이 앞좌석은 2.7배, 뒷좌석은 3.8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오히려 뒷좌석에서 더 철저히 안전띠를 매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시연에 동행한 교통안전공단 권용복 이사장은 "공단은 마치 교통안전의 '종합쇼핑몰'처럼 다양한 교통수단에서 발생할 우려가 있는 사고에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며 "어떤 차든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하려면 관련 기관의 적극적인 노력뿐 아니라 국민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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