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로 최소 5천명 숨진 리비아…원흉은 '기후변화·정치혼란'

입력 2023-09-13 12:17
수정 2023-09-13 13:35
홍수로 최소 5천명 숨진 리비아…원흉은 '기후변화·정치혼란'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후 사실상 무정부 상태 이어져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북아프리카 국가 리비아를 덮친 열대성 폭풍 '다니엘'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피해를 남긴 배경에는 기후변화와 정치 혼란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리비아 당국은 12일(현지시간) 기준으로 동북부 항구도시 데르나에서만 최소 5천300명이 숨지고 1만명 이상의 실종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중해에서는 한해 두세차례씩 '메디케인'(medicane)으로 불리는 열대성 저기압이 발생하지만 이처럼 대규모 인명피해가 동반된 건 이례적이다.

AFP 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참사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열대성 저기압은 수온이 따뜻할수록 더 큰 위력을 갖는데,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해수면 온도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바다는 산업화 이후 인간 활동으로 과잉 배출된 열의 90%가량을 흡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의 기후변화 관련 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은 지중해 동부와 대서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소보다 섭씨 2∼3도나 높아지면서 "강수량이 더욱 커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앞서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는 올해가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런 요소가 맞물리면서 이달 4일 지중해에서 형성된 다니엘은 리비아와 불가리아, 그리스, 튀르키예 등 주변 각국에 광범위한 피해를 남겼다.

그중에서도 리비아의 피해가 유독 컸던 데는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이란 '인재'(人災)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리비아는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여파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뒤 동부를 장악한 리비아 국민군(LNA)과 서부의 통합정부가 대립하는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노후한 기반시설이 제대로 관리·보수되지 못했고, 재난 예측과 경보, 대피 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실제, 최대 피해 지역인 데르나에선 시 외곽 댐 두 곳이 연달아 무너지면서 대홍수가 발생, 주민 수천명이 흙탕물에 휘말린 채 바다로 떠내려가는 참사가 벌어졌다.

현지에선 문제의 댐들을 보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심지어 작년에는 '큰 홍수가 발생할 경우 댐 두 곳 중 하나가 터지면서 데르나 주민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한 학술지에 실리기도 했다고 한다.

영국 오픈대학의 환경시스템공학자인 레슬리 메이본은 기후변화로 극단적 기상현상이 잦아지고 강해진다고 해도 이에 가장 취약한 이들은 사회·정치·경제적 요인에 의해 정해진다고 강조했다.

역시 오픈대학 소속인 케빈 콜린스 박사는 "폭풍만이 인명 피해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데르나의 비극은 리비아의 예보·경보·대피 체계가 제 역할을 못한 결과인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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