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유대인 숨겨준 폴란드 가족 9명 시복…뱃속 아이도 복자에
나치에 처형된 울마 가족 복자품 올라…일가족 전체 시복은 최초
당시 만삭이던 어머니 태중 아기도 포함돼…"모친 피로 세례받았다"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숨겨줬다가 독일 나치에 처형된 폴란드 일가족이 가톨릭교회의 복자(福者) 반열에 올랐다.
부부와 1∼7세 어린 자녀 6명과 함께 숨질 당시 만삭이던 부인의 태중 아이까지 이례적으로 모두 복자로 인정됐다.
10일(현지시간) AP 통신과 영국 BBC방송,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날 폴란드 남동부 마을 마르코바에서 유제프·빅토리아 울마 부부와 자녀 등 일가족 9명의 시복 미사가 거행됐다.
시복은 가톨릭교회에서 신자 가운데 영웅적 덕행이나 순교 등 업적을 남겨 공경할 만한 이를 복자로 선포하는 교황의 선언이다.
일가족 전체가 시복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시복 미사에 참석한 마르첼로 세메라로 교황 특사는 "울마 가족이 순교라는 가장 큰 대가를 치렀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한 연설에서 "이들이 전쟁이라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으로 다른 이들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면서 광장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연설은 시복 미사에 생중계됐다.
울마 가족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3월 24일 새벽 나치 헌병과 지역 경찰에 의해 마르코바의 집에서 살해당했다.
이들은 당시 자택에 유대인 8명을 숨겨주고 있다가 누군가의 밀고에 의해 발각된 것이다.
44세였던 유제프는 농부이자 가톨릭 운동가였다. 그는 아내 빅토리아(31)와의 사이에서 장녀 스타니슬라바(7), 차녀 바르바라(6), 장남 블라디슬라프(5), 차남 프란치셰크(3), 삼남 안토니(2), 생후 18개월 된 막내딸 마리아 등 3남 3녀를 뒀다.
그리고 빅토리아는 만삭이었다.
울마 가족의 집에 들이닥친 나치 헌병과 경찰들은 다락방에 숨어 있던 유대인들을 사살한 뒤 부부와 아이들을 마당으로 끌고 나왔다. 부부는 어린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총에 맞아 숨졌고 아이들도 그 뒤를 따랐다고 BBC는 전했다.
울마 가족은 1995년 이스라엘의 야드 바솀 홀로코스트 기념센터로부터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기간 유대인을 도운 다른 종교인들에게 헌정하는 '열방의 의인'(Righteous Among Nations) 칭호를 받았다.
교황청은 이들 가족의 시복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빅토리아의 태중에 있던 아이까지 순교자로 간주해 복자로 인정할지를 두고 고심했다고 한다. 복자에 오르려면 세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논의 끝에 지난 5일 성명에서 "태중의 아이가 순교한 어머니의 피로써 세례를 받았다"고 발표해 시복 자격을 인정했다.
가톨릭교회는 공적인 공경 대상이나 그 후보자에게 시성 절차에 따라 가경자(可敬者), 복자, 성인(聖人) 순으로 경칭을 부여한다.
복자는 후보자인 가경자 다음 단계로, 교황이 허락한 특정 교구와 지역에서 공식적 공경의 대상이 된다.
최종 단계인 성인이 되면 전 세계에서 해당 인물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거나 미사를 드리는 등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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