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고 불쾌해"…지하철 대신 자전거 타는 파리지앵들
2019년 말 지하철 대규모 파업·이듬해 코로나19로 시민들 더 꺼려
파리교통공사, 지하철 환경 개선 위해 고군분투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지하철 안에서 다른 사람들 틈에 끼어 있는 게 너무 싫어요. 진이 다 빠집니다."
8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 앞 자전거 대여소.
책가방을 멘 직장인 장(32)은 타고 온 자전거를 주차하며 지하철을 타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가끔 비가 오거나 길이 막히고 신호등에 걸리긴 하지만, 경치도 볼 수 있고 바깥 공기도 쐴 수 있다"며 "쾌적하지 않은 지하철보다는 훨씬 낫다"고 덧붙였다
잠시 뒤 자전거를 빌리러 나타난 플로르(26)는 "갇혀 있는 느낌이 싫어서" 자전거를 탄다고 했다. 매일 출퇴근도 자전거로 한다. 파리 지하철의 상황이 어떠냐고 묻자 그는 "지하철을 전혀 안 타서 내부 상황이 어떤지조차 모른다"고 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이들처럼 지하철 대신 자전거를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일부 파리 시민에게 수도에서 지하철을 타는 건 극복할 수 없는 시련이 돼 버렸다"고 보도했다.
르피가로가 인터뷰한 앤 마리(가명·53)는 여름 바캉스 기간을 끝내고 다시 출근하러 지하철을 탔다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지하철이 얼마나 더러운지 깨달았다. 좌석에 오물이 묻어 있고 플랫폼에선 가끔 참을 수 없는 냄새가 나 역겨웠다"며 이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폴린(29)은 젊은 여성의 입장에서 지하철은 "성적 불쾌감이나 만연한 불안감"이 뒤섞인 장소라고 했다.
파리 시민들이 지하철을 더 멀리하게 된 건 2019년 말∼2020년 초 당시 정부의 연금 개혁 추진에 반발해 파리교통공사(RATP) 직원들이 대규모 파업을 벌였을 때다.
약 두 달간 파리를 비롯한 수도권의 대중교통이 모두 끊기자 사람들은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뚜벅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사람들은 공기 순환이 잘 안되는 밀폐된 지하철과 더 거리를 두게 됐다.
수도권 대중교통을 관할하는 일드프랑스 모빌리테에 따르면 파리 지하철은 2019년의 승객 수치를 회복하지 못하고 90% 선에 정체돼 있다.
파리 지하철의 열악한 환경은 수사 대상으로도 올랐다.
파리 검찰청은 RATP가 역내 공기 오염 수준을 승객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혐의를 잡고 현재 수사 중이다.
식품환경노동위생안전청(ANSES)은 지난해 6월 지하철 내부에서 검출된 독성 미세 입자 물질 수준이 외부보다 3배 더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조사는 전체 309개 역 중 RER A선의 오베르, 지하철 1호선의 프랑클랭 루즈벨트, 지하철 4호선의 샤틀레 등 3개 역에서 이뤄졌다.
RATP는 지하철 내부의 대기질 개선을 위해 애쓰고 있다.
일간 르파리지앵에 따르면 RATP는 최근 가장 환기가 안 되는 노선 중 하나로 꼽힌 지하철 5호선 바스티유역과 퀘 드 라 라페 역 사이에 대형 환기 장치를 설치해 곧 가동에 들어간다.
올해 12월엔 모니터링 기관인 에어파리프와 함께 역별 미세먼지 농도 지도를 공개한다.
아울러 열차에 제동을 걸 때마다 미세 마모 입자가 방출되는 점을 고려해 새로운 브레이크 패드로 미세 입자 배출을 60% 이상 줄인다는 목표다.
RATP는 지하철 선로의 자갈에 입자 발산을 막는 고정체를 뿌리는 실험도 시작했다.
르파리지앵은 이 기술이 한국의 서울 지하철을 위해 개발된 것이라고 소개하며, 한 분기 동안 지하철 5호선 캉포포미오 역에서 실험한 결과 미세먼지(PM10) 수치가 75%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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