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비켜간 시진핑 외교…美와 충돌 피하고 '내 편' 공들이기
10월 일대일로 정상 포럼에 집중…G20 불참 속 시진핑·푸틴 밀착
시진핑, 11월 APEC 정상회담 참여 여부 주목…신냉전 구도 우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9∼10일 인도 뉴델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불참 결정엔 함의가 적지 않다.
우선 미국의 경제·안보 압박을 우회하면서, 이에 맞대응할 '아군'을 챙긴 후 미국에 대응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많다.
위기에 처한 중국 경제, 대만에의 군사 공격 가능성, 우크라이나 침략국인 러시아에 대한 지원 등을 놓고 미국 주도의 G20 정상회담 무대에서 수세에 몰릴 게 뻔한 상황에서 시 주석은 이 자리를 피하고 차후 반격의 기회를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 中, 美 주도 압박 예상 G20엔 저강도 대응…리창 총리 대참
시 주석의 외교 행보의 변화는 뚜렷하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시기의 칩거에서 벗어나 작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 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첫 대면 정상회담을 했다.
3월에는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설득해 두 나라가 정식 외교관계를 재개하도록 했다.
지난달 브릭스 정상회담에선 시 주석이 주도적으로 나서 기존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를 보태 회원국을 11개국으로 늘렸다.
서방 주도의 G7 체제에 대항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 주석은 내친김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포섭하려 한 듯하다. 미국·일본·호주와 함께 안보협의체 쿼드(Quad)의 일원이 돼 대(對)중국 인도·태평양 전략에 크게 힘을 실어주는 인도를 중국 편으로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인도는 최근 몇 년 새 미국과 부쩍 가까워졌다.
특히 경제 위기로 인한 '탈(脫) 중국' 기업들의 유입으로 사상 최대의 경제적 호황을 누리고, 미국과의 연대로 안보 이익을 극대화하는 인도가 중국에 곁을 내줄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의 '중국 견제' 목소리가 커질 뉴델리 G20 정상회의는 중국에 그다지 달가운 자리가 아니다.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컴퓨팅 등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배제하는 서방의 '디리스킹'(위험 제거) 필요성,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수출 통제 문제 등은 물론 대만해협 안보 위기 등 이슈가 주로 논의될 게 뻔해서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미 델라웨어주 레호보스 비치에서 취재진에 시 주석의 G20 불참 소식에 "실망했다"는 말로 아쉬움을 표시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중국 내에선 시 주석의 G20 불참은 바이든 미 대통령을 피할 의도가 아니라는 설명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5일 전문가들을 인용해 미국과의 긴장 관계 때문에 시 주석이 G20에 안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지역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방류와 중국·인도 관계 등 껄끄러운 문제들을 고려해 불참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리창 총리가 시 주석 대신 G20에 참석하는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이로 볼 때 중국 내에선 시 주석의 G20 불참이 추가적인 미·중 갈등 때문으로 비치는 걸 꺼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 中, 서방 압박 맞선 일대일로 정상 포럼에 집중…푸틴 참석 예약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중국 압박은 경제·안보 이슈 중심의 디리스킹 공세로 중국의 발목을 잡으면서도 중국이 남중국해·대만해협 등에서 위기 상황을 촉발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올해 들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 존 케리 기후 특사,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 장관급 고위 인사 4명을 중국에 보낸 데 이어 이번에 뉴델리에서 미·중 정상 간 별도 만남을 계획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이에 선선히 응하지 않는 모습이다. 다른 대응책을 염두에 둔 듯하다.
10월 베이징에서 열릴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 포럼이 그것이다.
시 주석이 2012년 말 제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권좌에 오른 뒤 2013년부터 중국 주도로 추진돼온 일대일로 사업을 축으로 미국 등 서방의 대중국 압박에 맞서려는 모양새다.
일대일로 정상 포럼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일대일로는 국제 경제협력을 위한 새로운 플랫폼을 제공하는 한편 여러 나라의 발전과 세계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는 게 중국 외교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일대일로 사업은 이미 한계를 맞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G7의 유일한 참가국인 이탈리아가 탈퇴로 가닥을 잡자 중국이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실제 이탈리아가 중국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일대일로 탈퇴를 통보할 목적으로 안토니오 타야니 부총리 겸 외교장관을 지난 3일 중국에 보내자, 중국은 왕이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을 포함한 여러 채널로 그를 접촉해 잔류를 설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뚜렷한 밀착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일 조만간 시 주석과 만날 예정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혀 10월 일대일로 정상포럼 참석을 기정사실로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해 1월 푸틴 대통령의 방중을 시작으로 지난 3월 시 주석의 러시아 방문 등 두 정상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상대국을 찾아 '브로맨스'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로써 미국 주도의 서방에 맞선 중국-러시아라는 신냉전 구도가 한층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또 최근 북한의 대(對)러시아 무기 지원설과 연합훈련 개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북한-중국-러시아 3자 연계도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 시진핑, 11월 APEC 정상회의에나 참석할 가능성
중국이 미국의 디리스킹 등의 압박에 총력 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시 주석이 언제 바이든 미 대통령과 대좌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은 여러 이슈로 미국과 경제·안보 면에서 대치하는 상황이 일정 수준 호전돼야 미·중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인 듯하다.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채무불이행(디폴트)과 디플레이션(물가하락) 문제도 조기에 해결해야 할 문제다.
현재로선 오는 1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시 주석이 참석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상황이 여의찮으면 이마저도 불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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