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 50년…아물지 않은 '인권탄압' 상흔

입력 2023-09-05 04:35
칠레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 50년…아물지 않은 '인권탄압' 상흔

1천100여명 아직도 실종 상태…'경제발전' 군정 옹호론도 비등

보리치 정부, 오는 11일 기억 행사…시위 등 우려 속 보안 강화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민주 선거를 거쳐 출범한 첫 사회주의 정부'를 무너뜨린 칠레 군사 쿠데타가 오는 11일로 50주년을 맞는다.

군부의 권력 장악이 칠레 사회에 남긴 흔적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잔혹한 인권 탄압 속에 1천100명 넘는 사람이 여전히 실종 상태이고, 소위 '칠레의 기적'이라 불리는 눈부신 경제 발전의 향수는 군정 옹호 여론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당시의 폭력 행위에 대한 단죄가 아직 진행 중인 가운데 현지에서는 쿠데타 관련 행사를 앞두고 강력한 시위 우려가 커져, 정부가 치안 강화에 나섰다.



◇ 아옌데 정부 전복…피노체트 군부 독재 '17년'

1970년 대선에서 승리한 살바도르 아옌데(1908∼1973) 전 대통령은 혁명이 아닌 자유선거를 통해 첫 사회주의 정권을 탄생시키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광업과 금융업 등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기타 산업에 민간 참여를 허용하는 혼합경제 체제를 도입한 아옌데 정부는 영양실조 어린이에 대한 무료 우유 보급과 강력한 소득재분배 정책 등을 추진했다.

다만, 급격한 사회 변화는 다국적 기업을 비롯한 자본가와 상류층의 엄청난 반발을 야기했고, 미국과의 사이도 조금씩 틀어지게 했다. 자본주의 강대국의 잇단 투자 철회 속에 1971∼1973년 사이 칠레 인플레이션은 급등하고, 정부 예산 적자 폭도 커졌다. 보유 외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외교적으로는 1971년 쿠바와 수교를 복원하면서, 냉전 시대 서방을 자극하기도 했다.

여소야대 국면 속에, 국내에서도 반대파와 갈등을 지속하던 아옌데 전 대통령은 결국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15∼2006)를 중심으로 한 군부의 쿠데타로 인해 실권했다. 아옌데는 대통령궁 '라 모네다'(La Moneda)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옌데의 죽음을 둘러싸고 쿠데타군 살해 음모도 있었지만, 2011년께 칠레 당국은 자살로 결론지었다.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는 1990년까지 17년간 혹독한 군사 독재를 이어갔다. 당시 군정은 노조원, 학생, 예술가 등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여 고문을 자행했다. 이 기간 사망자, 실종자, 고문 피해자 등은 4만명에 이른다.

수도 산티아고 종합경기장은 양심수 대거 투옥, 고문, 초법적 처형 등 반인륜적 범죄 장소로 쓰였다. 헬기로 실려가 바다나 강, 산에 버려진 사람도 있는데, 훗날 이는 '죽음의 비행'으로 불렸다.

사망·실종자 중에는 지금까지 유해조차 찾지 못한 사례도 있다.

아옌데 이후 이념적으로 가장 왼쪽에 있는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 가브리엘 보리치(37) 현 대통령은 지난해 군정 시절 실종자 1천192명에 대한 사건 경위를 다시 살피고, 아직 찾지 못한 유해를 수색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다만, 피노체트 군정 시기에 칠레는 유례없는 경제 발전을 경험했다. 당시 칠레는 자유주의 시장경제 정책을 과감히 펼쳤는데, 국영기업과 광산 민영화, 규제 철폐, 무역장벽 해소 등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중남미에서 두드러지는 신흥 경제국으로 발돋움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 시기를 '칠레의 기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피노체트에 대한 칠레 내부 평가는 현재까지도 '인권탄압에 앞장선 독재자' 또는 '빈곤에서 구해낸 시대의 지도자'라는 식으로 크게 엇갈리고 있다.



◇ 11일 쿠데타 50주년 행사…전국에서 시위 예상

칠레 정부는 오는 11일 쿠데타 50주년을 맞아 수도 산티아고에서 쿠데타를 기억하고 '유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취지의 행사를 열 예정이다.

마누엘 몬살베 칠레 내무차관은 4일(현지시간) 현지 TV 방송에서 생중계한 기자회견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 주요국의 전·현직 정상과 외교 사절단 20여명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몬살베 차관은 "(행사에서는) 독재 시절 처형되고 실종된 공직자의 이름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칠레 정부는 주말을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도 예상된다고 전했다.그러면서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2천400여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주요 장소 보안을 강화하는 한편 헬기와 무인 비행장치(드론)를 활용한 공중 감시를 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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