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플 브뤼셀] 대변인은 '파리 목숨'?…EU·나토선 박수받고 떠났다
EU 상임의장, 8년간 일한 대변인에 공개 사의…나토 대변인도 '공로훈장' 받아
"생존 비결? 기관장에 '쓴소리 괜찮겠냐' 물었더니 '예스'한 덕분"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오늘은 나와 8년간 함께 일한 대변인이 진행하는 마지막 기자회견이다. 그에게 그간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다. 감사하다."
지난 7월 18일 유럽연합(EU)-중남미·카리브해국가공동체(CELAC)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함께 회견장에 선 다른 중남미 국가 정상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발언이다.
기자회견 사회를 본 바렌드 레이츠 EU 정상회의 대변인의 사임을 앞두고 공개석상에서 감사 인사를 전한 것이다.
미셸 상임의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같은 달 별도로 나온 보도자료를 통해 레이츠 대변인이 벨기에 총리실로 이직하게 됐다면서 그의 새로운 출발도 공개 응원했다.
'EU만의 특별한 문화일까' 하고 궁금해할 때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목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13년 만에 사임을 발표한 오아나 룬제스쿠 대변인에게 '근무공로훈장'을 수여한 것이다.
나토 본부에서 열린 수여식은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 나토 공보팀을 비롯한 직원들은 물론, 출입 기자들도 일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물론, 레이츠 대변인이나 룬제스쿠 대변인이 각각 8년, 13년씩 자리를 지킨 걸 보면 두 사람 모두 개인적 역량을 조직에서 확실히 인정받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기관장이 참모 격인 대변인에게 공개 사의를 표하는 장면은 '한국 기자' 입장에서 생경함 그 자체였다.
국내에서 여러 부처나 기업을 취재하면서 무수히 많은 대변인을 만나봤지만, '박수받고 떠난' 사례는 기억에 거의 없다.
'기관장의 입'이라고는 하나 대변인은 대체로 활동 운신의 폭이 좁고 되레 언론 대응 실패의 책임을 물어 결국엔 교체되는 모습을 더 자주 접했다.
그러다 보니 특별히 민감한 이슈가 터질 때면 아예 기자와 마주치는 걸 아예 피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자신이 '파리 목숨'이라고 자조적 농담을 하던 대변인도 있었다.
EU나 나토도 분명 기관 입장에서 불편해할 만한 기사가 쏟아지고, 결국 대(對)언론 메시지나 공보 대응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대변인 몫일 터다.
마침 사임을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만난 룬제스쿠 대변인에게 생존 비결을 물었다. 그는 전·현직 사무총장을 연달아 보좌한 나토 역사상 최장수 대변인이다.
그는 "스톨텐베르그 현 사무총장을 처음 만난 날, 대변인으로서 당신에게 아마 쓴소리나 조언을 굉장히 많이 할 텐데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랬더니 사무총장이 주저 없이 '예스(Yes), 당연하다. 어떠한 이야기도 들을 것'이라고 했다"면서 "매우 어려웠던 순간에도 상호 존중을 잃지 않고 협력한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상하관계를 막론하고 '쓴소리'가 가능할 수 있는 문화, 진부하디 진부하지만 국내 취재 현장에서도 마주할 날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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