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간첩혐의로 투옥한 미국인 수감 생활 영상 전격 공개

입력 2023-08-30 11:42
러, 간첩혐의로 투옥한 미국인 수감 생활 영상 전격 공개

자국 주재 美 외교관 "심문하겠다" 위협도…대미 압박 공세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러시아가 자국 교도소에 수감된 미국인이 복역하는 모습을 공개하고, 간첩 사건과 관련해 자국 주재 미국 외교관들을 심문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미 정부를 상대로 압박 공세를 펴고 있다고 서방 언론이 29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CNN 방송과 영국 BBC 방송 및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 방송 러시아 투데이(RT)는 이날 러시아 중부 모르도비야 교도소에 수감 중인 미국인 폴 휠런의 복역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을 공개했다.

미 해병대 출신으로 기업 보안 책임자로 일했던 휠런은 지난 2018년 12월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가 현지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에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모스크바시 법원은 2020년 6월 휠런의 간첩 혐의를 인정해 16년 형을 선고했고, 그는 현재 모르도비야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RT가 공개한 영상에는 휠런이 죄수복을 입고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교도소 여러 곳에 서 있는 모습과 수감 시설 내 공장에서 재봉틀을 사용하거나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그는 여유로운 표정에 가끔 미소까지 지었지만, 기자의 인터뷰 시도에는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며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해당 영상은 지난 5월에 촬영됐으나 이날에야 뒤늦게 공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RT가 3개월이 지나서야 해당 영상을 내보낸 것은 미국 정부로부터 모종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크렘린궁의 압박과 관련된 듯 보인다고 BBC 방송은 짚었다.

휠런은 줄곧 누명을 썼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 정부도 그를 '부당한 구금자'로 지정한 채 석방 노력을 기울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이다.

미 정부는 지난해 각각 경찰 폭행 혐의와 마약 밀반입 혐의로 러시아에 억류됐던 전직 미 해병대원 트레버 리드와 여자 프로농구선수 브리트니 그라이너를 죄수 맞교환 방식으로 석방시켰지만, 휠런은 돌려받지 못했다.



러시아는 지난 3월에는 미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WSJ) 소속 기자인 에반 게르시코비치도 역시 간첩 혐의로 체포해 구금 중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달 "정부는 두 사람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돼 있지만 아직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휠런의 수감 생활 영상이 공개된 이날 러시아 정보기관 FSB는 지난 5월 간첩 혐의로 체포한 전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미국 총영사관 직원 로베르트 쇼노프를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국적의 쇼노프는 러시아 정부가 2021년 자국 주재 미국 공관의 현지인 직원 채용 금지를 명령할 때까지 25년 넘게 미 총영사관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FSB는 쇼노프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과 관련한 자료와 2024년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시위가 벌어질 가능성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모스크바 주재 미 대사관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쇼노프 사건과 관련해 그와 접촉한 미 대사관 직원들도 심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미 국무부 대변인 매슈 밀러는 "러 당국이 쇼노프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러시아 정부가 자국민에 대해 점점 더 억압적인 조처를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라면서 "우리 직원들을 위협하고 괴롭히려는 러시아 보안국의 시도에 강력히 항의한다"고 응수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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