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리비아 외무 회동 파장…"아브라함 협약에도 악영향"

입력 2023-08-29 16:14
이스라엘-리비아 외무 회동 파장…"아브라함 협약에도 악영향"

리비아 항의 시위 격화…해임된 외무장관 "대통령이 책임 떠넘겨"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이스라엘과 리비아 외무부 장관의 이탈리아 회동이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을 통해 일방적으로 공개된 데 따른 파장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이스라엘이 추진 중인 '아브라함 협약'의 확장에 급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현지 일간 하레츠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은 지난 27일 나즐라 망구시 리비아 외무부 장관과 지난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고 밝혔다.

코헨 장관은 "리비아 외무장관과 양국 관계의 큰 잠재력에 관해 얘기했다"며 "회당과 공동묘지 등 리비아 유대인들의 유적을 보호하는 것의 중요성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양국 외무장관 회동 사실의 공개는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리비아에서는 젊은이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리비아 대통령 위원회는 압둘하미드 드베이바 리비아 통합정부(GNU)에 회동 경위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리비아 정치권에 고문 역할을 하는 국가 고위위원회도 회동에 경악했다며 관계자 문책을 요구했다.



결국 드베이바 총리는 망구시 장관의 직무를 일시 정지하고 이어 하루 만에 해임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망구시 장관은 해임된 직후 튀르키예로 피신했다.

드베이바 총리는 또 자국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관을 방문해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는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리비아의 사상 첫 여성 외무장관 타이틀을 가진 망구시의 주장에 따르면 드베이바 총리는 사전에 이스라엘 외무장관과의 회동 사실을 알고 있었고 승인도 했지만, 거리 시위가 벌어지자 이를 숨긴 채 장관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이스라엘 관리들도 망구시 장관의 주장이 맞는다고 귀띔했고, 한 리비아 관리는 리비아와 이스라엘 간 관계 정상화 논의가 지난 1월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트리폴리 방문 때 시작됐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소동이 이스라엘의 '아브라함 협약' 확장 계획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아랍 국가의 고위 외교 관리는 이스라엘-리비아 외무장관 회동을 둘러싼 소동이 이스라엘 관리에 대한 신뢰를 약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양국 외무장관 회동 공개로 촉발된 리비아의 거리 시위의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일부 국가는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에 대한) 용기를 잃게 될 것이며, 어떠한 지도자도 이런 일이 자국 수도에서 벌어지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 간 '아브라함 협약'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온 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스테파니 할렛 주이스라엘 대사 대리를 통해 이번 소동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관계자는 현지 방송인 채널12와 인터뷰에서 이번 소동을 코헨 장관과 로넨 레비 이스라엘 외무부 최고행정 책임자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자 독자적으로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코헨 장관은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나를 겨냥한 정적들의 공격이 아랍권과 관계를 구축하려는 외무부의 노력에 제동을 걸지 못할 것"이라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벌어지지도 않은 회동 공개를 비판한다"고 항변했다.

meolak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