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리비아 외무 회동…이스라엘 일방 공개후 '일파만파'(종합)
이스라엘 "합의된 만남…유대 유적 보호 논의"…리비아 "우연한 만남…합의·협의 없어"
리비아, 항의여론 들끓자 외무장관 직무정지…경질 및 해외도피설도
(카이로·서울=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장재은 기자 =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이스라엘과 리비아 외무장관이 이탈리아에서 회동했다는 소식이 공개되면서 리비아 측에서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양국이 외무장관 면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리비아 외무부 장관이 경질되고 해외로 도피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다.
28일(현지시간) AFP,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은 전날 성명을 통해 나즐라 망구시 리비아 외무부 장관과 지난주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났다고 밝혔다.
코헨 장관은 "리비아 외무장관과 양국관계의 큰 잠재력에 대해 얘기했다"며 "현지 유대 회당과 공동묘지 등 리비아 유대인들의 유적을 보호하는 것의 중요성을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방적으로 이뤄진 이번 발표에서 리비아가 이스라엘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회담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이탈리아가 침묵하는 가운데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리비아에서는 거센 후폭풍이 일었다.
수도 트리폴리와 외곽의 거리에서는 젊은이들이 길을 막고 타이어를 태우거나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면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국가원수의 지위를 지닌 대통령 위원회는 압둘하미드 드베이바 리비아 통합정부(GNU)에 회동 경위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리비아 정치권에 고문 역할을 하는 국가 고위위원회도 회동에 경악했다며 관계자 문책을 요구했다.
드베이바 총리는 망구시 장관의 직무를 일시 정지하고 법무장관이 이끄는 정부 위원회가 사실관계를 조사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망구시 장관 경질과 해외도피설이 나오기도 했다.
리비아 일간 앙와사트는 직무정지 후 망구시 장관이 개인 비행기편으로 튀르키예로 출국했으며, 그를 대신할 새로운 인물이 임명됐다고 보도했다.
망구시 장관 측은 코헨 장관과의 회동이 공식 회담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리비아 외무부는 "이탈리아 외무부에서 모임을 하던 중 준비되지 않은 채로 무심코 마주친 것"이라며 "어떠한 논의, 합의 또는 협의도 없었고 관계정상화에 절대적 반대를 재확인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스라엘 관리는 로이터 통신이 이번 회동이 최고위급 수준에서 사전에 합의된 것으로 1시간 이상 지속됐다고 주장했다.
북아프리카에 있는 다른 국가들처럼 리비아에도 유대교 관련 유적이 많다.
그러나 리비아는 과거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 시절부터 팔레스타인을 지지해 유대인 수천명을 추방하고 유대교 회당도 파괴했다.
지금도 리비아에는 같은 기조에서 이스라엘에 거리를 두는 대외정책을 지지하는 여론이 강하다.
리비아는 2011년 중동,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 여파로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뒤 무장세력 난립에 혼란을 겪고 있다.
유엔이 인정하는 GNU와 동부 유전지대를 점거한 권위주의자 칼리파 하프타르의 리비아 국민군(LNA)의 내전이 지속됐다.
각자 적법한 정권을 자처하는 양측은 2020년 10월 유엔 중재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휴전 협정에 서명하고 선거 일정에 합의했다.
그러나 두 세력 간 유혈사태는 되풀이됐고 상호불신과 제도 미비 속에 선거도 치러지지 않았다.
리비아는 지속되는 무력충돌과 정부의 정통성 논란 속에 대외정책 추진도 차질을 빚고 있다.
앞서 GNU가 추진한 튀르키예와의 합의도 의회의 반대 속에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이스라엘은 미국이 주도한 아브라함 협약을 통해 최근 수년간 일부 아랍권 국가와 관계를 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초강경파 정권은 요르단강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주민 탄압과 점령지 내 유대인 정착촌 확대 때문에 아랍권 국가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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