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개헌투표서 "체크 표시는 찬성표, X는 무효표 간주" 논란
"체크 표시, 찬성 의미로 널리 쓰이지만, X는 찬성·반대 둘 다 쓰여"
개헌 반대 야당 "경악스럽다"며 비난
(자카르타=연합뉴스) 박의래 특파원 = 호주가 호주 원주민들을 인정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헌법 기구를 세우는 내용의 개헌 찬반 국민투표를 앞두고 기표 방식으로 논란이 커지고 있다.
25일(현지시간) 호주 ABC 방송 등에 따르면 호주 선거관리위원회(AEC)는 오는 10월로 예상되는 개헌 투표에서 개헌에 찬성하면 'Yes'(네), 반대하면 'No'(아니요)를 직접 손으로 쓰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찬성을 의미하는 대문자 'Y'나 반대를 뜻하는 대문자 'N' 역시 각각 찬성과 반대로 인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V자 모양의 체크 표시와 'X' 표시다. 우리가 찬성을 원(ㅇ)으로 표시하는 것처럼 호주에서는 체크 표시를 찬성의 의미로 사용한다.
이 때문에 선관위는 기표란에 체크 표시를 할 경우에도 표기가 명확하면 찬성표로 간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X' 표시의 경우 반대표가 아닌 무효표로 간주한다고 밝혔다.
호주에서도 'X'는 주로 반대를 뜻할 때 사용되지만, 세관 양식이나 인구조사 양식 등에서는 긍정의 '네'를 의미할 때 'X' 표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톰 로저스 AEC 위원장은 "체크 표시는 찬성표로 구분될 수 있지만 'X' 표시는 무효로 구분될 것"이라며 "이는 수십 년 전부터 사용되던 방식"이라고 해명했다.
선관위는 지난 개헌 국민투표에서 유권자의 99% 이상이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기표했고 무효표가 된 0.86% 중 체크 표시나 'X' 표시로 인해 무효가 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헌 반대를 주장하는 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피터 더튼 자유당 대표는 국민투표의 유효표 처리 방침이 "경악스럽다"며 "혼란을 야기한다"고 비판했다.
수전 레이 자유당 부대표도 "'X'의 의미는 아주 단순하고 명확하다"라며 "호주인 중에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당은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올해 초 의회에서 이런 내용의 국민투표 방식을 정한 법을 통과시켰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인제 와서 트집을 잡는다는 것이다.
웨인 스완 노동당 전국 대표는 "전 세계 다른 많은 우파 정당처럼 야당이 기본적인 선거 제도를 불신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끔찍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호주 정부는 헌법에서 애버리지널(호주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주민들을 호주 최초의 주민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대변할 헌법 기구 '보이스'를 설립하는 내용의 개헌을 추진 중이다.
호주에서 개헌하려면 국회 통과 후 국민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하고 6개 주 중 4개 주에서 과반 찬성이 나와야 한다.
호주 국회는 지난 6월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법을 통과시켰으며, 이에 따라 호주 정부는 6개월 내 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현지 언론은 투표를 토요일에 해야 하는 점과 의회 회기·학교 방학·크리스마스 연휴 등을 고려할 때 10월 14일을 유력한 투표일로 보고 있다. 호주 정부는 이달 말 정확한 국민투표 날짜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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