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입김, 몸집 불린 브릭스…美주도 서방 중심 질서에 도전
5개국→11개국…사우디·이란 등 6개국 품고 G7 대항마 부상하나
유엔 개혁·탈달러화 지지…공동통화는 시기상조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6개 신규 회원국을 품기로 했다.
최근 미국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한미일의 공조 강화에 맞서 반(反)서방 연대 구축에 공을 들여온 중국의 바람대로 브릭스가 몸집을 불려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 중심 질서에 도전하는 모양새다.
◇ 애초 결론 도출 난망 예상 속 반전…"시진핑 외교 승리"
브릭스는 24일(현지시간) 채택한 제15차 정상회의 결과 문서인 '요하네스버그 Ⅱ 선언문'에서 내년 1월 1일부터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를 브릭스의 정회원으로 초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22일 시작된 이번 회의의 가장 중요한 의제인 회원국 확대 문제에 대해 기존 5개 회원국이 합의를 도출한 것이다.
경제·안보 분야에서 미국의 견제와 압박을 받는 중국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고립을 탈피하려는 러시아는 애초부터 브릭스 외연 확장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브릭스가 노골적인 '반서방 동맹'으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한 인도와 브라질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어서 애초 이번 회의에서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려우리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전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조건부 지지 발언 이후 정상들이 공동 기자회견까지 취소하고 논의를 지속하기로 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이에 앞서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 등의 브릭스 가입 지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20일 대국민연설에서 브릭스 회원국 확대 지지 입장을 천명한 의장국 남아공의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지난 22일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앞에서 이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남아공 현지 일각에서는 이번 회의 결과가 시 주석의 외교 승리라는 평가도 나온다.
시 주석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정상회의에서 의미 있는 결실을 도출할 수 있게 노력해준 라마포사 대통령과 남아공 정부에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 주요 산유국 품고 G7 대항마 부상?…"반서방 블록 구축 아냐" 목소리도
사우디와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가 추가되면 브릭스의 총 회원국은 11개국으로 늘어난다.
유엔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브릭스는 현재 5개 회원국만으로도 이미 전 세계 인구의 42%, 영토의 26%, 국내총생산(GDP)의 23%, 교역량의 18%를 차지한다.
여기에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와 이란, UAE에 남미의 아르헨티나까지 가세하면 브릭스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 정상회의 기간에도 수시로 구매력 평가를 기준으로 한 GDP는 이미 기존 5개 회원국만으로도 G7을 능가한다고 강조했다.
브릭스를 토대로 서구 중심의 G7의 대항마를 만들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브릭스는 정식 회원국 확대와 별개로 '브릭스 우호국' 또는 '브릭스 플러스' 등의 형태로 더 많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의 국가들을 끌어안겠다는 복안이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우리는 브릭스 확장의 첫 단계에 합의했고 추가 단계가 뒤따를 것"이라며 "외무장관들이 브릭스 파트너 국가 모델과 잠재적인 파트너 국가 목록을 더욱 발전시켜 다음 정상회담에서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진행된 브릭스-아프리카 아웃리치와 브릭스 플러스 대화에서 아프리카 대륙과 글로벌 사우스 국가 정상을 비롯한 정상급 인사 50여 명 전부에 연설 기회를 준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남아공 국제관계협력부(외무부)에 따르면 브릭스 가입을 공식 요청한 국가는 22개국이며 비공식적으로 관심을 보인 국가까지 포함하면 40개국이 넘는다.
한편 브라질과 인도, 남아공 등은 브릭스의 외연 확장이 주요 7개국(G7)의 대항마나 반서방 블록을 구축하는 게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 "신흥국·개도국 목소리 더 반영해야"…공동통화는 시기상조
외연 확장으로 신흥국·개도국의 세를 규합한 브릭스는 유엔 개혁을 비롯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G7 등이 주도하는 현재의 국제 질서를 신흥국·개도국의 목소리가 더욱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브릭스가 '요하네스버그 Ⅱ 선언문'에서 "유엔 안보리를 포함한 포괄적인 개혁을 지지한다"며 "안보리 회원국에서 개도국의 대표성을 높여 글로벌 도전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브릭스는 세계 무역 시장에서 미국 달러 중심의 결제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중국·러시아의 대립이 심화하면서 중러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탈달러 시도의 연장선상의 논의다.
다만 '브릭스 공동 통화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에 이번 정상회의의 공식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회원국들은 대신 회원국 간 역내 통화 활용을 늘리는 식으로 달러화 비중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2015년 설립한 자체 개발은행인 브릭스 신개발은행(NDB)의 역할을 늘려 세계은행(WB)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을 대체·보완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hyunmin6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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