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그룹 복귀로 전경련 부활?…"역할재설정으로 정경유착끊어야"
'전경련 고강도 혁신' 목소리 여전…"헤리티지재단처럼 명확한 역할 필요"
박정희정권부터 정부·기업 창구역할…尹정부 출범 후 부활 발판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기자 =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가 18일 정경유착 발생 시 탈퇴를 조건으로 삼성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재가입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4대 그룹의 전경련 복귀가 곧 가시화할 전망이다.
4대 그룹 재가입은 국정농단 사태로 홍역을 앓았던 전경련 위상 회복의 마지막 수순으로, 전경련은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전환해 재계 대표 기구로서의 역할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전경련이 이전과 같은 재계 '맏형'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명확한 역할 설정을 통해 그동안 발목을 잡아 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실히 청산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조언이 나온다.
◇ 혁신안 신뢰 얻으려면…"헤리티지처럼 명확한 역할설정 필요"
4대(삼성·SK·현대차·LG) 그룹 재가입은 물론 전경련이 국내 최대 민간 경제단체의 위상을 되찾고, 회원사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려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이 급선무라고 재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전경련도 이를 의식해 지난 5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의 명칭 변경, 정경유착 차단을 위한 윤리경영위원회 설치, 산하 연구기관(한국경제연구원) 흡수 통합을 통한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의 전환 등을 골자로 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안에 대해선 대부분의 기업이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삼성 준감위가 "혁신안으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단절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발표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재계는 이와 관련, 한경협으로 재탄생할 전경련의 새로운 역할이 확실히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분석했다.
현재 국내 경제단체들은 한국상공업 육성(대한상공회의소), 합리적인 노사관계 정립(한국경영자총협회) 등 모두 명확한 목적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경련은 정부와 기업 간 창구라는 기존 역할 외 구체적인 목적성을 갖지 못한 상태다.
전경련의 설립 목적을 명시한 정관 1호도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우리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고자 한다'는 추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경제·사회 싱크탱크로서의 정책 제안, 기업들의 대외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심점 등을 전경련의 새로운 역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 참고해야 할 본보기로는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거론된다.
1973년 설립된 헤리티지재단은 정치, 경제, 외교, 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로, 이 재단은 국정농단 사태 당시 40대 그룹을 대상으로 한 '전경련 발전 모델'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 새롭게 전경련 회장에 오르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풍부한 글로벌 인맥을 활용해 전경련이 글로벌 싱크탱크로서 자리 잡는 데 적극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주도로 한미관계가 강화되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양국이 협력해야 할 경제 현안이 많아지는 점을 고려할 때 류 회장의 인맥을 활용해 전경련이 한미 간 가교 구실을 톡톡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균관대 최준선 교수는 "전경련이 과거처럼 정부의 지시를 기업에 전달하는 그런 역할을 더는 하지 못할 것으로 본다"면서 "헤리티지재단처럼 국가에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기관으로서 역할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 성태윤 경제학과 교수는 "전경련은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기업들의 대외경쟁력을 강화하는데 구심점으로 역할할 수 있다"며 "IRA, 반도체 등 통상 이슈에 공동전선을 형성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박정희 정권부터 정부·기업 창구…尹정부 출범 후 부활 기지개
전경련은 1961년 8월 '시장경제와 자유경쟁이 작동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출범한 한국경제인협회를 전신으로 삼는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부정축재처리법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기업인들을 구속한 뒤 '단체를 만들어 협력할 것'을 석방 조건으로 내걸었는데, 이병철 삼성물산 회장은 이 조건을 받아들여 석방된 기업인 13명과 함께 경제재건촉진회를 조직했고, 곧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꿨다.
1968년에는 일본경제단체연합회 등과 대등한 조직을 만들겠다며 전국경제인연합회로 간판을 바꿨다.
이후 전경련은 국내 최대 민간 경제단체로 정부와의 관계에서 재계 입장을 대변하는 소통창구 역할을 했다.
전경련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구자경 LG 명예회장, 최종현 SK 회장, 김우중 대우 회장 등 내로라하는 재계 거물들의 회장직 수행으로 외형을 키웠고,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 울산공업단지 건설 등 국가 프로젝트를 정부와 함께 추진했다.
하지만 전경련은 '재계와 정부와의 소통창구'라는 역할상의 한계로 설립 내내 정경유착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모금한 것이 발각됐고, 1995년에는 재계가 전경련을 통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지원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밖에도 23개 대기업이 한나라당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세풍사건'(1997년) 등에 휘말리기도 했다.
특히 2016년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 때 미르·K스포츠재단을 위한 후원금 모금 사실이 드러나며 4대 그룹이 탈퇴하는 등의 내홍을 겪었고, 그 위상이 급격히 추락했다.
이 사태로 재계 '맏형'이었던 전경련은 문재인 정부 들어 모든 행사에서 '패싱'되는 굴욕을 겪었다. 그 결과 유력 기업인들이 모두 회장직을 고사, 2011년 회장에 오른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12년간 '울며 겨자 먹기'로 전경련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던 전경련은 기업과 민간 중심의 시장경제 기반을 강조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부활의 실마리를 찾았다.
전경련은 윤 대통령 당선 직후 경제단체 중 가장 먼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정책 제안서를 제출했다.
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을 지낸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회장 직무대행으로 합류하면서 전경련은 본격적으로 위상 회복에 나섰다.
전경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방일·방미 경제사절단 구성도 주도했다.
이중 전경련 부활의 확실한 신호탄을 올린 것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과 함께 한 한일·일한 미래파트너십 기금 구축이었다.
두 단체가 각각 1억엔(10억원)씩 출연해 미래인재의 교류, 경제안보·스타트업 연계에 나서는 기금은 문재인 정권 당시 얼어붙었던 한일 관계의 해빙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viv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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