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라치오주 대변인 "볼로냐 대학살 주범들 무죄"…야당 격앙
주지사 "개인적인 글"이라며 해임거부…"주범중 한명이 매제" 가족사도 언급
대학살 추모 메시지서 '네오파시스트' 언급 안한 멜로니 총리에게도 '불똥'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볼로냐 대학살'에 대한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주 대변인의 '망언'이 정치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라치오주 주지사가 야당의 대변인 해임 요구를 거부하면서 논란은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7일(현지시간) '일 메사제로', '일 솔레 24 오레' 등 현지 언론매체에 따르면 라치오주 대변인인 마르첼로 데 안젤리스는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볼로냐 대학살' 주범들이 무죄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볼로냐 대학살'은 1980년 8월 2일 볼로냐 기차역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사건을 가리킨다. 85명이 숨지고 200명 이상이 다친 이 사건은 이탈리아 역사상 최악의 테러 참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사건으로 총 5명의 극우 단체 활동가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중 발레리오 피오라반티, 프란체스카 맘브로는 각각 무기징역, 루이지 치바르디니는 징역 30년형을 확정받았다.
데 안젤리스는 "평균적인 지능과 최소한의 지적 정직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피오라반티, 맘브로, 치바르디니가 학살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확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논란이 커졌지만 그는 "나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이라며 "(1600년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화형당한) 조르다노 브루노처럼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나는 자랑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볼로냐 대학살' 43주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라치오주 대변인이 이탈리아 국민들의 상처를 헤집는 망언을 하자 정치권은 들끓었다. 야당은 라치오주 주지사에게 대변인을 해임하라고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그러나 프란체스코 로카 주지사는 "대변인이 사적인 공간에 올린 글에 불과하다"며 해임 요구를 일축했다. 오히려 로카 주지사는 대변인에게는 아픈 개인사가 있다며 오히려 두둔하는 듯한 입장을 취했다.
'볼로냐 대학살'의 주범 중 한 명인 치바르디니가 데 안젤리스 여동생의 남편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카 주지사가 대변인 해임 요구를 거부하고 버티자 야당들은 멜로니 총리가 직접 나서라고 요구했다
최대 야당인 민주당(PD)의 엘리 슐라인 대표는 지난 6일 "라치오 주지사가 해임할 수 없다면 멜로니 총리가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슐라인 대표는 "멜로니 총리가 '볼로냐 대학살' 43주기에 네오파시스트에 의한 학살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일"이라며 "총리가 그의 동료들이 법정에서 확립된 진실을 뒤집도록 계속 허용한다면 더욱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멜로니 총리는 지난 2일 '볼로냐 대학살' 43주기 추모 메시지에서 네오파시스트에 대한 언급 없이 테러 사건으로 지칭해 빈축을 샀다.
이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이 사건의 배후로 네오파시스트 세력을 콕 집어 지목하고 여전히 이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규탄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멜로니 총리는 15살 때 네오파시스트 단체에서 활동했던 전력 때문에 취임 이후에도 네오파시스트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있다
라치오주 대변인의 망언을 그대로 놔뒀다가는 한통속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 뻔하자 멜로니 총리가 조용히 뒤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는 전했다.
이 신문은 멜로니 총리가 로카 주지사에게 대변인의 자진 사임을 유도하라고 은밀하게 요구했으며, 자신이 이끄는 집권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에 논란 확산 차단을 위해 이번 사안과 관련해 함구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chang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