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등급 강등에 국내 주식·원화↓…"영향 제한적, 변동성 주시"(종합)
전문가들 "2011년 강등 때와 여건 달라"…정부·한은, 모니터링 강화
(서울·세종=연합뉴스) 정책·금융·증권팀 =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의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 소식에 2일 국내 금융시장이 출렁거렸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내다 팔면서 코스피와 코스닥지수가 각각 1.9%, 3.2% 하락했으며 원/달러 환율은 14원 넘게 급등해 다시 1,300원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피치는 1일(현지시간)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전격 강등했다. 3대 국제 신용평가사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은 2011년 이후 12년 만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날 오전 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 국내외 금융·외환시장 영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필요하면 시장 안정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채권과 환율시장 변동성이 다소 커질 수 있으나 금융시장이 충격에 휩싸일 정도의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코스닥 3% 넘게 하락·환율 14.7원 뛰어…외국인·기관 '주식 매도'
피치의 등급 강등 발표 이후 개장한 우리 금융시장에서 코스닥지수는 3% 넘게 떨어지고 환율은 14원 넘게 뛰었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1.90%(50.60포인트) 떨어진 2,616.47로 마쳤다. 코스닥지수도 909.76으로 3.18%(29.91포인트)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4.70원 오른 1,298.50원으로 마쳐 1,300원 재진입을 앞두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과 기관이 동반 매도에 나서면서 시장에 부담을 줬다.
외국인은 코스피와 코스닥시장, 지수선물시장에서 각각 847억원, 3천268억원, 2만6천900계약을 순매도했다. 기관도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에서 모두 8천억원 넘게 순매도했다.
피치가 강등 배경으로 미국의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 등을 꼽으면서 신용 여건 악화와 투자 감소, 소비 감소 등을 이유로 경기 침체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이 투자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등급 강등이 증시의 단기 미세 조정으로 끝날지, 시간을 두고 조정의 계기가 될지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며 "2011년의 경험을 생각하면 좀 더 주의 깊게 관망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 "피치 영향 제한적"…"미 국채금리·환율 변동성 주시"
시장에선 이번 피치의 미국 등급 강등을 놓고 지난 2011년 8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사례를 떠올리면서 "이번은 2011년과 다르다"며 "피치의 등급 하향 조정의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하이투자증권에 따르면 S&P는 2011년 8월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부채 한도 인상을 놓고 대립하자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다.
당시에는 미국 증시가 15% 이상 급락하는 등 전 세계 증시가 영향을 받았다. 코스피는 그해 8월 1일 2,172.27에서 9일 1,801.35로 6거래일 만에 17%나 떨어졌다. 당시 코스피 거래대금이 13조5천50억원에 달할 정도로 투매가 발생했다.
그러나 당시 폭락한 미 증시가 2개월 후 반등하면서 등급 하향 조정이 장기적으로 증시 악재로 작용하지 않았다.
또 시기적으로도 2011년은 미국 경기와 금융시장이 2008년에 불거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시점이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완화 정책을 추진하던 때다. 또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가 확산하는 등 유럽 신용 위기도 한몫했다.
그러나 현시점은 2011년과 거시환경에서 차이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정부부채와 재정적자가 확대되는 반면 주요국 대비 미국의 견조한 경기 회복을 전망했다. 미 연준의 금리 인상에도 신용 위험이 진정되고 있다는 점도 2011년과 다른 점이다.
김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11년과는 거시환경이 다르다"며 "최근 견조한 고용지표 지속 등 미국 경기 회복세가 안정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국 부채 위험이 단기에 확산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이번 피치 등급 강등이 2011년처럼 시장에 충격을 줄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어서 시장 충격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며 달러 조달 여건에 미치는 영향도 클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과거 사례를 고려하면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이 우리나라 무역 구조나 외국인 자금 유출입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일각에선 이번 피치 결정이 단기적으로 전 세계 채권과 환율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피치 결정이 미국 국채금리의 추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면 단기적으로 시장의 스트레스가 커질 수 있고 달러와 유로, 엔화 가치 변동성이 단기적으로 확대될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날 실무회의를 열어 미국 신용등급 하향에 따른 시장 영향을 점검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은 시장 상황 점검 회의를 주재하면서 국내외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각별히 경계하며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방 차관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국내외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관계기관 간의 긴밀한 공조 체계를 유지하고 필요한 때 시장안정을 위한 조치를 신속히 시행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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