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발언대] "숨 편히 쉴 실내공기 만들어줘요"
환기구용 신개념 필터 선보인 윤용철 볼타필터 대표
(서울=연합뉴스) 박세진 기자 = 지은 지 좀 됐다 싶은 건물 천장의 환기 구멍을 올려다보면 께름칙한 먼짓덩어리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천장에 숨은 환기 통로인 덕트(duct)에 쌓여 있다가 공기 흐름을 타고 이동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유해물질이다.
현재 환기 시스템에는 덕트 내의 다양한 오염물질을 걸러낼 필터가 장착돼 있지 않다.
기술적인 제약과 비용 문제 때문이다.
2022년 4월 설립된 ㈜볼타필터는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솔루션을 내놓은 스타트업이다.
환기 시스템의 실내 쪽 환기구인 급기구(給氣口)에 붙일 수 있도록 최적화한 신개념 필터를 개발해 2022 대한민국 유망특허기술 대상(환경혁신 부문)을 받았다.
윤용철(64) 대표를 지난 17일 만나 얘기를 들었다.
◇ 간단한 방식이지만 15년 연구의 결실
"오래전 회사 동료들과 5~6년밖에 안 된 건물의 식당에 갔는데 동료 한 명이 천장 환기구에 붙은 시커먼 먼짓덩어리를 보고 '저것이 음식에 떨어지는 것 아냐'라면서 그냥 나가자고 하더군요. 그때 공조 덕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걸레로 환기구 덮개만 닦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봤죠."
윤 대표가 더 좋은 필터 개발에 정열을 쏟는 '필터 맨'으로 인생 후반부를 살게 만든 계기다.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윤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부품재료설계 인력교육센터에서 기획연구원으로도 일했다.
2005년경부터는 평소 관심을 뒀던 고기능성 필터를 만드는 일에만 매달렸다.
그걸 시작으로 약 15년간의 노력 끝에 상용화한 것이 실내 환기구 전용 필터(브랜드명 볼타필터)다.
이 필터는 얼핏 보면 대수로이 여기기 어려운 제품 같지만 시장에서 주목받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 실내 공기 오염시키는 환기 설비…대책도 없어
가스레인지로 음식을 조리할 때 생기는 일산화탄소나 건축자재 등에서 나오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같은 가스성 물질은 공기청정기를 아무리 돌려도 제거할 수 없다.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 이들 물질의 농도가 높아지면 건강을 위협하게 된다.
오염 농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실내외 공기를 갈아 주는 환기가 꼭 필요한 이유다.
환기 방식은 창문을 열어 수시로 외부 공기를 들이는 자연환기와 상시로 팬을 돌려 바깥 공기를 끌어들이는 기계환기가 있다.
새집증후군 문제로 상시 환기의 중요성이 부각하면서 2006년부터는 일정 규모 다중이용시설은 물론이고 아파트에도 환기장치가 의무화됐다.
그런데 환기 시스템이 실내공기를 오염시킨다는 지적을 받는 게 현실이다.
덕트로 불리는 공조관(空調管)을 지나가는 외부 공기가 청소 손길이 미치지 않는 관 속에 축적된 유해물질을 실내로 옮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막을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 유해물질 잡고 공기흐름 원활한 필터 개발
이 문제의 실체를 이해하려면 지금 사용되는 환기 구조를 먼저 봐야 한다.
현 환기 시스템은 모터로 팬을 돌려 바깥 공기를 끌어들이는 인입 설비와 실내 천장 곳곳에 설치하는 급기구로 구성되는데, 양쪽을 연결하는 공기 통로가 천장 속의 공조관이다.
송풍장치가 위치한 인입부에는 오염 물질을 걸러내는 필터가 있지만 급기구 쪽에는 필터를 달지 않는다.
인입부에 두는 부직포 재질의 기존 필터를 급기구에 중복으로 사용할 경우 공조관을 지나면서 흐름이 약해진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사실상 환기 기능이 유명무실해진다는 이유에서다.
급기구에 필터를 달 수 없으니 공조관에 유해물질이 쌓여 있다면 공기를 타고 실내로 유입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급기구 쪽에도 모터 팬 같은 송풍장치를 달아 공기를 강제로 밀어 넣거나, 아니면 무동력으로 오염물질을 포집하면서 공기가 원활히 흐르게 하는 새로운 필터를 개발해야 했다.
전자는 별도의 설치공사와 적지 않은 비용이 수반되는 단점 때문에 지금껏 활용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표가 공조관 속의 오염된 공기를 깨끗하게 걸러 실내로 들어오게 하는 기술로 내놓은 것이 통기성을 높인 볼타필터다.
◇ 원자 극성에 착안한 기술…전구 교체하듯 쉽게 설치
합성수지에 은나노티타니아, 광촉매제 등을 융합한 볼타필터는 모든 물질을 이루는 원자의 극성에 착안한 기술로 만들어졌다.
미량의 공기 흐름만 있어도 필터 속에 산재한 수많은 플러스(+), 마이너스(-) 단자가 미세먼지나 바이러스 같은 유해 물질이 지닌 반대 극성과 상호 작용하면서 흡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특성으로 공기 흐름을 그다지 막지 않으면서 각종 바이러스와 0.3㎛ 미만의 미세먼지까지 잡아준다고 한다.
윤 대표는 빌딩 공조실이나 아파트 전열교환기(환기시스템) 인입부에서 공급하는 바람이 실내 쪽 급기 구간에서 약해져도 각종 이물질을 잡아내고 공기를 흘려보낼 수 있다며 기존 환기시설에 간편하게 설치하고 전구처럼 교체할 수 있는 것도 볼타필터의 기능적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실내 쪽의 환기구 전용 필터가 전 세계를 찾아봐도 없습니다. 수많은 정전기 유도 극성 실험을 거쳐 내놓은 볼타필터가 세계에서 환기구 전용 필터로 상용화된 첫 사례일 겁니다."
2017년부터 아들과 함께 필터 제조업체 '오페'(OPE)를 이끌어온 윤 대표는 지난해 이 필터 이름을 애초의 '볼타퓨리탑'에서 '볼타필터'로 바꾸고 2022년 4월 새롭게 사업을 전개할 법인(볼타필터)도 세웠다.
그동안 사실상 국내외에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다.
윤 대표는 환기구 전용 필터 시장이 무주공산 격이라고 할 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굉장히 방대합니다. 국내뿐만이 아니죠. 일본도 방치돼 있고 유럽 시장도 그렇고 미주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외에도 우리 기술로 실내 공기질을 높이는 'K-에어 솔루션'을 보급할 겁니다."
윤 대표는 볼타필터 제조 기술을 응용한 사업 확장도 염두에 두고 있다.
자동차 엔진용 등으로 필터 제품군을 늘리면서 공기 청정 기능을 갖춘 선풍기를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현대인들은 하루의 80~90%를 실내에서 보내기 때문에 숨을 편하게 쉴 수 있는 실내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값비싼 공기청정기를 대체할 수 있는 선풍기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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