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 때 행방 묘연 푸틴, 태세 전환…연일 공개 석상 노출
23년 통치 이래 최대 치명상…건재 과시용 외부 행보
언론인들과 비공개 간담회도…여론 조성용 '메시지 단속' 추측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 반란 사태가 수습 국면에 접어들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연일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3년간 러시아를 통치한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하며 통치력에 치명상을 입은 만큼 '평소와 다름없다'는 모습을 자주 노출해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9일(현지시간)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 반란을 일으킨 이후부터 이날까지 푸틴 대통령이 자신 앞에 닥친 위기를 어떻게 공개적으로 관리했는지 일자별로 정리했다.
프리고진이 용병들을 이끌고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나도누의 군사령부를 장악한 뒤 모스크바로 진격하던 24일, 푸틴 대통령은 5분간의 TV 연설을 통해 프리고진을 반역자로 규정하고 반란자들을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프리고진의 진격과 푸틴 대통령의 강경 대응 입장이 맞부딪치며 모스크바를 둘러싼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일부 소셜미디어에선 푸틴 대통령이 반란을 피해 전용기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현지 언론에 "대통령은 크렘린궁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사면과 망명을 대가로 반란을 중단하기로 한다.
그러나 다음날인 25일도 푸틴 대통령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영 로시야 TV와 사전 녹화한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 게 전부였다.
행방이 묘연해진 러시아 정권 수뇌부를 두고 평론가들 사이엔 의문이 제기됐다.
푸틴 대통령이 브라운관을 통해서나마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26일 밤이다.
TV 연설에 나선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의 반란을 "협박"이라고 깎아내리며 "사태 처음부터 대규모 유혈사태를 피하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자신의 지도력 덕분에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았다고 강조한 셈이다.
동시에 그는 "러시아 사회 전체가 정부를 중심으로 단결했다"면서 반란에 가담한 자들에겐 선처를 베풀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프리고진의 반란이 중단된 지 사흘 만인 27일 푸틴 대통령은 드디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레드 카펫이 깔린 크렘린궁의 야외 계단을 밟고 내려와 광장에 마련된 무대에서 보안군, 국가근위대 등을 상대로 공개 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여러분이 격변에서 조국을 구했고 사실상 내전을 막았다"며 그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28일엔 정상 업무에 복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스크바를 떠나 반란사태 후 첫 현장 행보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남부 캅카스 지역의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데르벤트를 방문해 현지 브랜드 산업 확장에 찬사를 늘어놨다.
이날 러시아 국영 매체는 푸틴 대통령이 데르벤트 시내에서 자신을 환영하는 군중들에게 다가가 악수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영상을 공개했다.
NYT는 이를 두고 푸틴 대통령이 여전히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한 이미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프리고진이 일부 러시아 도시에서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을 의식한 장면이라는 얘기도 있다.
또한 다게스탄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이고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 알 아드하에 맞춰 이번 방문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반란 사태를 봉합하려 통합을 강조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후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궁에서 러시아 언론인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는데, 자신을 전면적인 통제권을 가진 지도자로 내세우며 언론 단속에 나섰을 거란 추측이 제기됐다.
그는 이날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내 기술 박람회에 참석해 새로운 안면 인식 기술과 첨단 프린터를 둘러봤다. 심지어 게임용 의자에 앉아 다른 패널들과 무대 위에서 러시아 만화 캐릭터에 대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NYT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안정을 보장해 온 푸틴 대통령이 평소와 다름없는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점점 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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