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난민선 참사 용의자 9명 구금…"견인시도 후 배 기울어"
"1인당 수천달러 지불, 승무원들이 폭행"…생존자 증언 잇따라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 난민선 참사에 연루된 용의자 9명이 구금됐다고 AP 통신과 AFP 통신 등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리스 남부 칼라마타 지방법원은 이날 범죄조직 가담과 과실치사, 조난 유발 등 혐의로 기소된 이집트 국적 밀입국 브로커 9명에게 재판 전 구금 명령을 내렸다.
20~40세로 알려진 이들 용의자는 지난 14일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연안에서 침몰한 난민선을 운항한 의혹으로 최근 체포됐다.
그리스 당국에 따르면 이 침몰 사고로 수백명의 탑승자 가운데 단 104명이 생존했고, 현재까지 사망자 82명의 시신이 수습됐다.
용의자들은 이날 법정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자신들 또한 이민자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침몰 사고가 공해상에서 벌어진 만큼 그리스 법원에 관할권이 없다는 주장도 펼쳤으나 재판부가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기소된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게 될 경우 최대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AP 통신은 생존자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750명 안팎의 이민자가 1인당 수천달러를 지불하고 난민선에 오른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탑승자는 식음료를 제공받지 못했으며, 승무원에게 뇌물을 주지 않으면 선창에 남겨져 갑판에 올라가려 할 때마다 폭력을 당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그리스 해안경비대의 견인 시도로 인해 난민선이 전복됐다는 기존의 의혹과 관련한 생존자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4천달러(약 515만원)를 냈다는 팔레스타인 출신 압둘 라만 알하즈(24)는 "그리스 선박이 던진 밧줄이 우리 뱃머리에 묶였다"며 "보트가 기울기에 우리는 '그만두라!'고 외쳤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파키스탄 출신 탑승자들은 대부분 선창에 있었다며 "승무원 중 한 명은 내게 보트에 탄 파키스탄인 400여명 중 11명만 생존했다고 말해줬다"라고도 증언했다.
파키스탄 생존자 라나 후세인 네시어(23)에 따르면 선창에 머물렀던 아내와 두 자녀는 살아남지 못했고, 본인은 갑판에 타 생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승무원들은) 우리가 일어서지 못하도록 벨트로 우리를 때렸다"며 침몰 직전 '대형 선박'이 견인용 밧줄을 부착했다는 얘기를 다른 탑승자들에게 전해 들었다고 했다.
앞서 그리스 당국은 탑승자들이 구조를 거부하고 운항을 고집했다고 주장하며 경비대의 잘못된 견인 방식이 침몰 사고로 이어졌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한 시리아 생존자는 쿠르드족 TV와의 인터뷰에서 밀입국 브로커들이 구명조끼를 허용하지 않았고 탑승자들의 식료품을 바다에 던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침몰 당시 난민선은 항해 5일째에 접어들었으며 1~2일이 된 시점에 물이 이미 떨어져 바닷물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침몰 사고와 관련해 "끔찍하다"며 "더 시급한 건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EU가 튀니지 등 수많은 이주민이 나오는 아프리카 지역 경제 안정화에 기여하고 난민 규정 개혁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이날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난민의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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