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달라 vs 못한다"…민간참여 공공주택 1조원대 공사비 갈등

입력 2023-06-20 06:03
"올려달라 vs 못한다"…민간참여 공공주택 1조원대 공사비 갈등

건설사 "공사비 20∼30% 올라 사업지별 200억대 적자"…공사차질 우려

LH·지방공사 "물가변동 반영 조항 없다" 난색…감사원 사전컨설팅 의뢰키로

국토부, 뒤늦게 공사비 인상 가능하게 지침 개정…LH 등 "강제조항 아냐"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최근 건설 현장 곳곳에서 공사비 분쟁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지방공사 등 공공과 민간이 공공택지에서 함께 추진하는 민간참여 공공주택 사업장에서도 조 단위의 공사비 증액 문제를 놓고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올해 3월 공공발주 공사처럼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이하 민참사업)도 급격한 물가변동 등으로 인한 사업비 조정이 가능하도록 관련 지침을 개정했지만, 강제 규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공사업자들이 가격 인상에 난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공공사업에 참여해 거액의 손실을 떠안고, 공사 차질까지 우려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 건설사 "공사비 20∼30% 올라"…공공 "물가변동 반영 조항 없다"

20일 주택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1∼2년 새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민참사업 참여 건설사들과 공공 사업시행자와의 공사비 증액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민참사업은 공공과 민간이 공동 협의체를 구성해 공공기관은 토지를 제공하고, 민간 사업자는 주택을 건설·분양해 투자 지분에 따라 수익을 분배·정산하는 사업이다.

이 가운데 일부 지방공사는 사업 방식을 변형해 건설사에 수익 배분 없이 약정한 공사비만 지급하는 단순 도급 형태로 계약을 맺기도 했다.

민참사업은 공공과 민간의 공동 사업이지만, 국가계약법상 일반 공공발주 공사와 달리 사업 협약서상에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인상 조항 없이 계약이 이뤄졌다.

이 때문에 공공 사업자들은 최근 공사비 급등에 따른 손실을 건설사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GS건설[006360]과 계룡건설산업이 LH와 함께 민참사업으로 건설한 위례신도시 A2-6블록 공공임대는 공사가 끝나 올해 3월부터 입주가 시작됐으나, LH와 공사비 증액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건설사들은 계약 당시보다 공사비가 20% 이상 올라 추정 손실액이 268억원에 달한다며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공동 사업 시행자인 LH는 애초 사업협약에 물가 연동 조항이 없는 만큼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부산도시공사가 추진한 부산 에코델타시티내 민참사업 3개 필지(18, 19, 20블록) 분양 아파트도 현재 대우건설[047040], DL이앤씨[375500], GS건설 컨소시엄 등 민간 건설사들이 공사비 증액을 놓고 도시공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건설사들은 계약 당시보다 공사비가 20∼30% 올라 시공이 어렵다며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반면, 부산도시공사는 자체 사업협약서에 추가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을 근거로 공사비 인상을 거부하고 있다.

업체가 추산한 공사비 상승에 따른 손실액은 필지당 417억∼490억원 선으로 3개 필지에서 총 1천360억원을 웃돈다.

부산도시공사의 다른 민참사업까지 합하면 총 7개 사업지에서 2천200억원을 넘는 공사비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전체 손실액 2천200억원 중 공동 시공에 참여한 부산지역 중소 건설사 14곳의 손실 규모가 1천200억원으로 절반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며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 건설사들은 공사비 증가로 인한 자금난으로 연쇄 부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건설업계는 최근 공사비 인상 폭은 사업협약 당시 예측 불가한 수준으로, 공공도 손실을 분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건설사의 임원은 "최근 1∼2년간 자잿값과 인건비 상승분은 천재지변 수준의 급격한 물가변동에 해당하고, 건설사의 과실로 인한 것도 아니다"라며 "민간 정비사업이나 일반 시행사업도 당초 도급계약서상 계약된 금액에서 공사비를 올려주고 있는데, 공공이 직접 참여한 사업에서 공사비 상승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 공사비손실 전국 62곳, 1조2천억 추산…국토부 지침개정에도 협의 난항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민참사업(준공 현장 제외)은 총 62개 필지 4만8천가구로 추정된다.

LH의 민참사업 현장은 국토부 통계에서 제외된 초기 협약 단지까지 합쳐 총 39개 필지, 2만7천여가구에 이른다.

건설업계는 최근 공사비가 2020∼2022년 협약 당시보다 20∼30% 이상 올라 사업지별로 평균 200억원 이상의 공사비 증액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준공 이전 진행 현장을 62개로 보면 공사비 증가로 인한 손실액이 줄잡아 1조2천억원에 달하는 것이다.

주택업계는 민참사업에서 공공과 민간이 수익은 똑같이 나누면서 공사비 손실은 민간이 모두 책임지게 하는 것은 사업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국토부는 민참사업의 공사비 문제가 커지자 지난 3월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 시행지침'에 사업비 재협의 절차를 신설하고 제도 개선에 나섰다.

개정 지침에는 협약체결 시 예상치 못한 급격한 물가변동 등이 발생한 경우 사업 참여자(출자자)들이 사업비를 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아직 사업이 완료(정산)되지 않은 기존 사업장에 대해서도 협약 체결 이후 발생한 급격한 물가변동에 대해 민간이 공공시행자에 사업비 증액을 요청할 수 있으며, 공공·민간 협의체에서 증액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그러나 LH나 지방공사들은 기존 사업에 대한 국토부 지침이 반드시 공사비를 올려줘야 한다는 '강제 조항'이 아닌 '임의 규정'으로 해석된다며 여전히 공사비 증액에 부정적이다.

최초 사업 협약 당시 물가변동에 따른 공사비 증액 조항이 없었던 만큼 사업비를 임의로 조정하면 배임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LH는 국토부의 새 지침을 토대로 공사비 증액 여부에 대한 법률 검토에 착수하고, 조만간 감사원에 사전 컨설팅을 의뢰하기로 했다.

사전 컨설팅 제도는 적극 행정 등을 추진하려 하지만 의사 결정이 어려울 때 감사원이 의견을 제시해 주는 것으로, 그 결과에 따라 공사비 증액 가능 여부를 판단해보겠다는 것이다.

건설업계는 공사비 증액이 불발될 경우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공분양주택 '뉴홈' 50만가구를 공급을 위해 민간참여를 확대해야 하는 국토부도 비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업비 조정 여부는 계약 당사자 간 협의로 결정할 문제로 국토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월권이 될 수 있다"면서 "다만 시행지침에 사업비(공사비) 재협의 근거와 절차를 마련한 만큼 이 지침을 제대로 준수하는지 여부를 관리감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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