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싱하이밍 "한국서 가장 큰 법은 국민 감정"
2012년 류창 사건 때 "한국 국민은 양심적…국민감정 따라야" 지적
美·中 베팅 발언이 가리키는 것은 냉혹한 현실…국익 실현 원칙 필요
(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사실 한국에서 가장 큰 법은 국민감정법이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가 이른바 '베팅 발언'으로 한국에서 설화(舌禍)에 휩싸였을 때 필자는 10년 전인 2012년 11월 싱 대사가 한 이 말을 떠올렸다.
당시 아주국 부국장이었던 싱 대사는 연례적인 한중 기자단 교류 차원에서 베이징(北京)의 중국 외교부를 방문한 한국 언론에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이 국민감정에 따라 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가 국민 감정까지 거론했던 이슈는 이른바 '야스쿠니(靖國) 방화범'인 류창 사건이었다.
자기 외할머니가 한국인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밝혔던 류창은 2011년 일제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에 화염병을 던졌다.
그는 이듬해인 2012년 1월 주한 일본대사관에도 화염병을 던졌고 이 일로 한국에서 체포돼 징역(10월)을 살았는데 일본이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면서 외교 현안이 됐다.
일본은 범죄인 인도 조약을 앞세웠고 중국은 범죄인 인도 조약상 거절 사유인 '정치 사안'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자국 송환을 한국에 압박했다.
싱 대사는 법원의 결정이 있기 전에 진행된 당시 간담회에서 과거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침략을 받은 역사를 공유한다고 강조하면서 먼저 류창 사건을 거론했다.
그는 "한국 기자들이 조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센카쿠(尖閣)라고 말하는 데 불편하고 마음이 아프다"면서 "조어도는 청일전쟁 때 일본이 불법 점령했다. 조어도는 독도 문제와 너무 비슷하다. 왜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는지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야기 나온 김에 류창 사건도 말하고 싶다. 중국이 한국의 항일 운동에 대해 어떻게 대했느냐"면서 안중근 윤봉길 의사 등 중국 내 항일 운동에 대해 거론했다.
또 "한국의 가장 큰 법은 국민감정법"이라면서 "저는 한국 국민이 양심적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당시 싱 대사의 이런 발언은 기사로 소개되지 않았다. 중국의 일방적인 입장을 실무자가 재강조한 것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기자단의 판단에서다.
이후 법원에서는 2013년 1월에 류창에 대한 일본의 인도 요구를 거절하는 판결이 나왔고 류창은 중국으로 송환됐다.
싱 대사의 베팅 발언 때 이 일이 생각난 것은 싱 대사가 누구보다도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는 베팅 발언이 주재국 대사로 본국 훈령에 따르다 거칠게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한국의 다양한 여론까지 고려해서 한 전략적 발언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조정관이 지난 12일 "일종의 압박 전략(pressure tactic)"이라고 평가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실 '베팅 발언' 논란의 원조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부통령으로 2013년 12월 한국을 찾은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면서 "미국은 계속 한국에 베팅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친중 행보를 한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나온 이 베팅 발언을 놓고 당시 국내에서는 외교적으로 논란이 됐다.
당시 정부 당국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 의도를 갖고 계획적으로 한 말이 아니라 일종의 말버릇이라면서 언론에 무마를 시도를 하기도 했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도 수시로 이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버릇 이면에는 국제 전략과 힘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싱 대사의 베팅 발언이 가리키는 현실은 똑같다고 본다.
우리가 올바른 정세 판단 아래 잘 선택하고 베팅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최대의 국익 구현을 위한 목표와 행동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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