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후 첫 러시아 핵무기 반출…유럽에 핵전쟁 우려 커졌다

입력 2023-06-15 11:26
수정 2023-06-15 13:54
냉전 후 첫 러시아 핵무기 반출…유럽에 핵전쟁 우려 커졌다

러 '핵 위협' 수위 높이는 와중에 벨라루스에 전술핵 배치

푸틴 '책사' "서방의 우크라 지원 꺾기 위해 유럽 주요 시설 핵공격" 주장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핵 위협'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냉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자국 핵무기를 해외로 반출하면서 유럽의 핵전쟁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전날 자국 매체 전쟁 담당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그는 또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무기 공급이 계속되면 3차 세계대전이 촉발될 수 있으며 이 경우 미국은 물론 아무도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쟁 발발 직후부터 자국의 핵무기를 과시하면서 핵전쟁과 3차 세계 대전 가능성 등을 꾸준히 거론해 왔다.

같은 날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러시아 전술핵무기를 순차적으로 받고 있다고 밝히면서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보다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게 됐다.

러시아 핵무기가 해외에 배치되는 것은 옛 소련 붕괴 뒤 러시아가 진행한 해외 배치 핵무기의 국내 이전이 완료된 1996년 이후 27년 만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25일 자국 전술핵을 우방인 벨라루스에 배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지 두 달여 만에 이를 실행에 옮겼다.

앞서 지난 9일 러시아를 방문한 루카셴코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는 내달 7∼8일께 관련 시설 준비를 완료해 전술핵 배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일정을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벨라루스에 배치된 러시아 핵무기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루카셴코 대통령은 러시아로부터 "미사일과 폭탄을 받았다"고 말한 점으로 미뤄 미사일에 탑재되는 종류로 추정된다. 벨라루스에는 이미 러시아의 핵무기 운반체계인 이스칸데르 미사일과 폭격기가 배치돼 있다.

미국과학자연맹(FAS)은 러시아 핵무기가 리투아니아와의 국경 인근에 있는 리다 공군기지에 배치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핵무기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이 넘도록 확실한 전과를 올리지 못한 상황에서 갈수록 핵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을 '깨뜨리기 위해' 핵 공격도 불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러시아 싱크탱크 외교국방정책위원회의 세르게이 카라가노프 명예회장은 지난 13일 크렘린궁 연계 매체 '글로벌어페어스'에 낸 '어렵지만 필요한 결정'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전 세계적 핵전쟁 발발을 막으려면 유럽 주요국을 겨냥해 핵 공격을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카라가노프 명예회장은 푸틴 대통령의 책사로, 러시아 외교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러시아를 침략하려는 서방의 의지를 꺾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용인할 수 없는 수준으로 높게 설정된 핵무기 사용 문턱을 낮춰 핵 억지력을 높여야 한다"고 기고문에 적었다.

카라가노프 명예회장은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한 것은 그 첫 번째 단계라면서, 어느 시점에는 잠재적 핵 공격 대상인 유럽 내 주요 시설 주변에서 러시아인들을 대피시켜야 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또 러시아가 유럽에서 핵 공격을 실행에 옮기더라도 미국이 러시아 본토를 겨냥해 핵무기로 보복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국은 나토의 집단 안보 공약을 지속해서 재확인해온 만큼 러시아가 핵 공격을 실행에 옮길 경우 어떤 방식으로든 확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해 10월 푸틴 대통령이 핵위협을 가하는 상황을 '아마겟돈'(성경에서 묘사된 인류 최후의 전쟁)에 빗대며 핵전쟁으로 인류가 공멸할 위험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경고한 바 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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