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란과 핵협상 물밑 재개…"한국 석유대금 동결해제도 논의"(종합)

입력 2023-06-15 14:49
美, 이란과 핵협상 물밑 재개…"한국 석유대금 동결해제도 논의"(종합)

WSJ·NYT 보도…"비공식·성문화하지 않은 새 합의 임박"

중동 긴장완화 차원…카타르 중재로 미국인 석방 논의도

"한국에 동결된 이란 석유대금 70억달러 해제도 테이블에"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미국이 중동 지역 긴장 완화를 위해 이란과 미국인 수감 및 석방과 핵협상 재개 등을 포함한 논의를 물밑에서 조용히 재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현지시간) 이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작년 12월 미국 뉴욕에서 양국 고위급 논의가 시작됐으며, 이후 백악관 관계자들이 추가 접촉을 위해 최소 3번 오만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오만 당국은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대화 재개와 맞물려 최근 미국 당국은 이라크 정부가 이란에서 수입한 전기와 가스에 대한 대금 25억유로(약 3조4천590억원)의 지급을 승인했다.

해당 자금은 앞서 미국의 대이란 경제 제재로 동결된 상태였다.

다만 미 당국자들은 "이번 자금 이전은 일상적인 것으로, 핵프로그램 등 논의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미국이 핵 위기를 타개하고자 이란과 비공식 합의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미 정부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고 미국인 수감자들을 석방하기 위해 조용히 협상해 왔다고 전했다.

미국의 목표는 비공식적이고 성문화하지 않는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이란 당국자들은 이를 '정치적 휴전'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 관리 2명은 특히 이러한 새 협약이 '임박한' 상태라고 전하기도 했다고 NYT는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21년 취임할 당시 지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폐기된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복원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작년 11월 관련 협상에 사실상 사망선고를 내린 바 있다.

WSJ은 미국의 대이란 외교 시도 재개가 긴박한 국제·중동 정세와 맞물려있다고 진단했다.

이란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무인기(드론)를 계속 제공하는가 하면, 우라늄 농축을 강행하고 원유 운송의 요충지인 호르무즈해협에서 파나마 유조선을 나포하는 등 올해 들어 급속도로 고조된 긴장감을 완화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이란은 미국인 수감자 석방 및 자국 핵 프로그램 동결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해외에 발이 묶여있는 에너지 수출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 중이다.

특히 이 같은 상황을 한국 우리은행에 동결돼있는 석유 수출대금 약 70억달러(약 8조9천억원) 및 이라크에 있는 수십억달러에 연결 짓고 있다.

이와 관련, WSJ은 "이 문제를 잘 아는 한국의 전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이란과 미국이 인도주의적 목적에 따른 자금 동결 해제를 놓고 논의를 지속 중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NYT도 이란 관리들이 미국인 수감자들의 석방과 관련해 한국에 묶여 있는 약 70억달러의 석유 대금을 받으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협상을 잘 아는 사람들과 이란 관리 한 명에 따르면 이 돈은 인도주의 용도로 제한되고 카타르 은행에 보관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주 이라크가 이란에 에너지 부채 27억6천만달러(약 3조5천억원)를 갚을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합의에 진전이 있다는 징후일 수도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이 돈은 미국이 승인한 제3의 판매업자들이 이란인의 식량과 의약품에 한정해 쓰일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치적 지형과도 무관하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는 야당인 공화당이 이란 핵합의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만큼, 이 의제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부상하는 것을 피하고자 보다 비공식적인 테이블에서 대이란 협상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WSJ은 짚었다.

이란은 우라늄 농도를 60%까지 높이는 작업을 지속 중인 것과 관련, 이를 넘는 우라늄 농축을 하지 않기로 합의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NYT는 전했다.

이스라엘은 고농축 우라늄이 핵무기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란을 강도 높게 비난해 왔다.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우라늄 농도는 90% 수준이다.

이란은 또한 이란의 동맹세력이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미군에 배치된 미국 군수업체 직원들에 대한 공격을 멈추도록 하고, 국제 핵 사찰단에 대한 협조를 늘리며, 러시아에 탄도미사일 판매를 삼갈 것이라고 이란 관리들은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이란의 특정 행동이 우리를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긴장 고조에 따른 위기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며 "이런 점에서 우리가 수개월간 이란에 긴장 완화를 요구해왔다는 것도 비밀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핵합의 복원 못지않게 억류된 미국인 석방도 중요한 의제다. 최근 카타르는 양국 사이에서 수감자 석방 논의를 중재해왔다고 WSJ은 설명했다.

미 싱크탱크 워싱턴연구소의 헨리 롬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이전에도 비슷한 자금이전 승인 결정을 내렸지만, 이번의 경우 이란과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흐름에서 떼어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긴장 완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지난 11일 "이란의 원자력 산업 인프라가 유지된다면 서방과의 핵합의도 문제가 없다"고 언급했다.

미국도 공개적으론 대이란 제재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란의 석유 수출량이 지난달에만 하루 155만배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는 등 대외 석유 판매도 늘고 있는 추세다.

다만, 이스라엘 일각에서는 미국과 이란의 회담 재개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새 합의가 이행되면 이란에 대한 서방의 경제적 압력이 줄어들 수 있고, 더 광범위한 핵 협정으로 이어져 이란 핵 활동은 제대로 억제하지 못한 채 이란 경제에 구명줄을 던져주는 결과만 낳을 것으로 우려한다는 것이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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