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지도층, 푸틴 승전 가능성에 회의 커져…'분쟁 동결' 선호"
'피로스의 승리' 시나리오도…"민족주의 진영 vs 군 지도부 분열 심화 양상"
(서울=연합뉴스) 유철종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이 16개월째 장기화하면서 러시아 정치·경제 엘리트 계층에서 승전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통신은 상황에 정통한 러시아 연계 소식통들을 인용해 현지 정계 및 재계 엘리트들이 전쟁 피로감을 느끼며 종전을 희망하고 있으며, 심지어 낙관적인 사람들조차 승전이 아닌 무기한 휴전을 의미하는 '분쟁 동결'을 최선의 결과로 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엘리트들은 올해 말 협상을 통해 분쟁이 동결되고, 러시아가 현재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유지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자국민에게 '피로스의 승리'를 선포하는 시나리오를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소개했다.
피로스의 승리는 많은 희생이나 비용을 대가로 치르고 얻는, 명목상의 승리를 일컫는 말이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전 개시 후 러시아를 떠나 현재 오스트리아 빈에서 싱크탱크 'Re:러시아'를 이끄는 전 러시아 정부 고문 키릴 로고프는 "푸틴이 이번 전쟁에서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러시아 엘리트들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 중앙은행 고문을 지내고 현재 독일 베를린에 기반을 둔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 센터'의 전문가로 일하는 알렉산드라 프로코펜코는 "(러시아) 관리들이 상황에 적응했지만 아무도 터널 끝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들은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라고 소개했다.
러시아 엘리트들 사이의 이러한 비관적 분위기는 자국군의 성공적이지 못한 군사작전에 대한 강경파 민족주의 세력과 러시아군 지도부 사이의 분열을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통신은 분석했다.
강경파 민족주의 진영을 이끄는 민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군사적 실패에 대해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 등을 맹비난하면서 재앙적인 패배를 막기 위해 푸틴 대통령이 총동원령과 계엄령을 발령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프리고진은 지난달 말 언론 인터뷰에선 "(러시아) 엘리트 계층 자녀들이 크림을 바르는 모습을 인터넷에 자랑할 때 서민의 자식들은 산산조각이 난 시신으로 관에 실려 돌아온다"면서 "이런 격차는 처음 군인이 들고일어나고 뒤이어 그들이 사랑한 이들이 뒤따랐던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처럼 마무리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스크바의 친(親)크림계 정치 전문가 세르게이 마르코프조차 "오래전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대부분을 장악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러한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면서 "너무 많은 큰 실수들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물론 러시아는 여전히 전쟁을 위한 막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푸틴 대통령과 고위 관리들은 러시아가 승리할 것이란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영 매체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앞세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쏟아내면서 국민의 애국심을 조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 여론도 그렇게 낙관적이지는 않다.
현지 여론조사 기관 폼(FOM)이 지난달 19일부터 21일까지 러시아인 1천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53%가 가족과 친구들이 전쟁에 대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이 비율은 지난 4월 비슷한 답변을 한 응답자 비율보다 11% 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며, 최근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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