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11월 APEC 대만 총통·홍콩 행정장관 참석 놓고 '신경전'

입력 2023-06-08 17:55
미중, 11월 APEC 대만 총통·홍콩 행정장관 참석 놓고 '신경전'

대만, 내년 1월 총통선거 앞두고 차이잉원 참석 전력투구

'국가보안법 제정' 존 리 홍콩 행정장관, 미 의회 비판 표적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미중 양국이 오는 11월 열리는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대만 총통과 홍콩 행정장관의 참석 여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들이대며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참석은 불가하다는 입장인 데 비해 개최국인 미국은 정치·경제·외교적 득실을 염두에 두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보인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도 변수로 떠올랐다. 미 행정부는 그를 초청했으나, 일부 미 하원의원은 반(反)민주인사라는 점을 들어 그가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미중 양국이 경제·안보 이슈를 두고 갈등과 대립을 거듭해온 가운데 APEC 정상회의가 양국 간 '힘겨루기 장'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특히 차이 총통의 참석이 가능해진다면 그 직후인 내년 1월 대만 총통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서로 셈법이 간단치 않다.

◇ 차이잉원 참석 기대감 키워온 미국

대만은 1991년 APEC에 가입했으나, 그동안은 매번 중국의 반대로 참석이 불가능했다.

작년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TSMC의 장중머우(81) 전 회장이 대만을 대표해 참석했다. 대만 총통이 지명한 '총통 대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주최국인 미국이 대(對)중국 압박 목적으로 대만 총통 참석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 의회도 이에 힘을 보탠다. 미 공화당 의원 21명은 지난 4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에 차이 총통을 초청하도록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대만의 경제·문화·기술적 중요성을 고려해 차이 총통이 직접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미국은 '자유로운 대만'을 지원하며, 대만과의 관계 강화를 약속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간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무기 판매 확대 등 대만 문제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왔으며, 이에 중국 역시 사사건건 거칠게 대응해왔다.

중국은 2016년 집권 이후 독립 노선을 걸어온 차이 총통의 민진당 정부에 대해 '대화 거부'로 맞서왔다.

중국은 내년 1월 총통 선거에서 친중 세력인 국민당 후보가 당선되도록 지원하거나, 최소한 민진당 후보의 당선을 차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차이 총통의 APEC 정상회의 참석을 막으려는 중국의 위협이 부각되면 내년 1월 총통선거에서 민진당이 유리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민진당의 집권 연장을 바라는 미국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카드다.



◇ 대만 총통 APEC 참석 성사까지는 '험로'

그러나 현재로선 차이 총통의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 참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이 주최국이라고 하더라도, 대만 총통을 불참시킨 관례를 깨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랜 기간 갈등과 대립 일변도의 미중 관계에 해빙 조짐이 조금씩 일고 있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8일 중화권 매체들에 따르면 대만의 미국 주재 대사 격인 샤오메이친 대만경제문화대표부 대표는 최근 차이 총통이 11월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려면 APEC 소속 회원국 모두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도 지난달 초 중국의 반대를 고려할 때 차이 총통의 11월 APEC 참여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미중 해빙 기류도 큰 변수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상대로 공급망 등 디커플링(분리)에 박차를 가하면서 미중 대립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신냉전' 위기가 초래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미국은 방향 전환을 모색하고 있으며, 중국도 '못 이기는 척' 호응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지난달 10∼11일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정치국원의 오스트리아 빈 회동, 지난달 19∼21일 일본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종료 후 바이든 대통령의 미중 관계 해빙 가능성 발언이 계기가 됐다.

현재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이 조율되는 가운데 미중 간 물밑 접촉을 통해 굵직한 사안들의 가닥이 잡혀 미중 간 갈등과 대립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게 된다면 차이 총통의 11월 샌프란시스코행(行)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 홍콩 행정장관 APEC 정상회의 자격 논란도 수면 위로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의 APEC 참석을 둘러싼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애초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은 "지역 경제 대화를 촉진하고, 글로벌 거시 경제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 간 협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홍콩의 수장인 리 장관을 초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근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공화당)·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공화당)·제프 머클리 상원의원(민주당)·짐 맥거번 하원(민주당) 등 4명이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존 리 행정장관이 홍콩의 보안부 장관 재임 시절인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평화적인 시위대에 폭력을 사용했다면서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리 장관의 APEC 정상회의 참석 결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홍콩의 언론·인권·민주주의 운동가에 대한 박해 범위를 확대해 악법으로 평가받는 홍콩 국가보안법의 제정을 주도한 리 장관은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현실적인 여건을 살펴볼 때 차이 총통의 11월 APEC 참석이 여의찮은 상황에서,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홍콩 행정장관의 참석을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kji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