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댐 안에서 폭파돼"…러 '우크라 소행' 주장 신뢰 잃어

입력 2023-06-07 10:17
수정 2023-06-07 18:12
전문가 "댐 안에서 폭파돼"…러 '우크라 소행' 주장 신뢰 잃어

러 "공습이나 자연붕괴"…파열모습 분석 때 '성립불가' 판정

미, 비공식적으로 러 소행 무게…"우크라가 저지를 이유 없다"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의 카호우카 댐 파괴는 시설 내부에서 이뤄진 폭발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다.

이는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으로 댐이 파괴됐다는 러시아 측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지적이다.

앞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측의 고의적인 사보타주(비밀파괴공작) 사건"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책임을 돌렸다.

러시아 내에선 우크라이나가 쏜 미사일 때문에 댐이 파괴됐다거나 이전의 손상으로 인해 댐이 저절로 무너졌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그러나 공학·군수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 원인을 내부 폭발로 보고 있다고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댐 자체의 구조적 결함이나 외부 공격에 의한 파괴 시나리오도 아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지만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의 공학과 교수이자 댐 붕괴를 연구해 온 미국 공학한림원의 그레고리 배처 교수는 NYT에 "댐이 붕괴할 수는 있다"면서 "그런데 사진을 보면 '이건 의심스럽다'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배처 교수는 수량이 평소보다 많아져 댐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할 경우 통상 댐의 양쪽 둑에서 먼저 균열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장 사진과 영상을 보면 카호우카 댐은 러시아 점령지 측에 인접한 중간 부분에서 처음 파괴가 시작돼 양측으로 피해 범위가 차츰 넓어진다.

전문가들은 1년 넘게 이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카호우카 댐이 반복적으로 손상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댐을 완전히 무너뜨릴 만큼 심각한 수준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지적했다.

배처 교수는 "수문 일부가 손상된 상황에서 수위가 높아질 경우 수문 몇 개가 찢어질 수는 있지만 이 정도 규모로 파괴되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주장처럼 우크라이나의 포격으로 댐이 폭파했을 가능성도 작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폭발이 가장 큰 피해를 낳으며, 그마저도 댐을 뚫으려면 최소한 수백 파운드의 폭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폭탄이나 미사일에 의한 외부 폭발은 댐에 가해지는 힘의 일부에 불과해 비슷한 효과를 얻으려면 몇 배나 더 큰 폭약이 필요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의 이런 분석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그는 이날 텔레그램에 올린 메시지에서 "러시아 테러리스트들이 카호우카 댐 구조물을 내부에서 폭발시켰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일단 공식적으로는 이번 댐 폭발의 배후를 아직 단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정책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린 러시아가 댐 폭발에 책임이 있다는 보도를 평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자 우크라이나와 협력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 NBC 방송은 일부 관리 등의 말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러시아 책임 쪽으로 기우는 첩보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로버트 우드 주유엔 미국대표부 차석대사 역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의 요청으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 참석 길에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면서도 "우크라이나가 왜 자국 영토와 자국민에게 이런 짓을 하고, 홍수를 내고 수만 명의 이재민을 만들겠는가"라고 반문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안보리 회의에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돌렸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지속하기 위해 군대를 재편성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만들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중요 기반 시설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고의적 파괴 행위는 매우 위험하며, 본질적으로 전쟁범죄 또는 테러 행위로 분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세르히 키슬리차 유엔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외부에서 포격으로 폭파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러시아 점령군이 지뢰를 매설하고 폭파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상당수의 안보리 이사국은 이번 폭파의 책임자를 지목하지 않으면서도 러시아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다면 이 같은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앞서 "우리는 댐이 어떻게 붕괴했는지에 대한 독립적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또 다른 파괴적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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