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RNA 연구' 석학 김성호 "호기심 좇을 수 있게 국가가 도와야"
전달RNA 3차원 구조 최초로 밝혀…과학기술유공자 선정
(서울=연합뉴스) 나확진 조승한 기자 = "과학은 진리를 찾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진리 탐구에 호기심을 가진 학생들이 자신의 호기심을 좇아 연구로 이어갈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전달RNA(tRNA)의 3차원 구조를 최초로 밝힌 세계적 구조생물학자 김성호(85) 미국 UC버클리대 명예교수는 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자신을 과학의 길로 이끈 것은 '호기심'이었다며 학생들이 경제적 문제로 호기심을 버리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선정돼 헌정식 참여를 위해 몇 년 만에 서울을 방문한 김 교수는 대구에 살던 학창 시절에는 진리를 찾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시인들이 진리를 찾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러다가 심리학, 철학을 접하니까 그것도 하고 싶고. 고등학교 2학년 말쯤에야 과학도 진리를 찾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렇게 1956년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한 김 교수는 자연이 가진 '대칭' 구조에 매료됐다고 했다.
"모든 물질이 대칭이 있는데, 분자구조도 대칭이 나타납니다. 이걸 연구하는 구조학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어요. 자연이 무슨 물질을 만들 때 어떤 대칭을 쓰느냐. 그 대칭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 이런 걸 알고 싶은 거였죠."
그는 이런 호기심이 이후 DNA 정보로부터 단백질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RNA 구조 분석 연구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당시는 DNA 구조가 발견돼 생물학에 혁명이 일어난 시기였습니다. 세계적 연구소들이 다음으로 RNA의 구조를 찾고자 경쟁하던 때였죠."
1963년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돼 피츠버그대 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자신이 전공한 구조학 방법론을 적용해 RNA 분석에 나섰다. 구조학을 통한 생물학 연구를 시도하던 알렉산더 리치 교수가 있던 MIT[038340] 생물학과 박사후 과정에서였다.
그는 자신이 연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리치 교수가 필요한 연구비와 연구 인력·장비를 충분히 마련해 지원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이 RNA를 이용한 코로나19 백신이나 항암제 등이 나오리라는 건 추측도 하지 못했다"며 당시 연구가 단기적 성과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학계의 과제는 당장 경제적 이득이 난다기보다는 10년, 20년 걸려 풀어야 하는데, 한국적 상황에서는 국가가 투자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패해도 상관없도록 저변을 넓히면, 몇 사람은 예상치 못한 중요한 발명을 하게 된다"며 "그 덕은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특임교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방문교수, 인천대 방문교수 등을 지내며 한국 학생과도 많이 교류한 그는 "한국에는 역량 있고 똑똑한 학생들이 매우 많다"며 "학생들이 자신의 호기심을 밀어붙일 수 있도록 국가가 장려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로만 쏠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자신도 걱정하고 있다며 "의사가 되면 진료에 너무 바빠 연구하고 공부할 여유가 없다는 게 (과학계로서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팔순을 훨씬 넘겼지만, 그는 아직도 UC버클리 연구실에서 과제 해결을 위해 골몰하는 '현역'이다.
자연의 대칭구조에 대한 의문에 대해 "아직도 해답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그는 최근엔 인공지능(AI)이 머신러닝을 통해 언어를 학습하는 방법을 이용해 '자연이 가진 언어·문법'을 AI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은 두 가지 차원에서 과학계에 새로운 혁명기"라며 "유전체학(지노믹스)의 발달로 생명체에 관한 모든 질문이 나올 수 있는 데이터를 모을 수 있게 됐고 AI의 발달로 인간의 두뇌만으로 다 할 수 없는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혁명이 그릇되지 않고 바로 간다는 걸 느낄 때까지 내 수명이 길었으면, 그래서 걱정 없이 생을 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노벨상 시즌이 다가오면 한국 언론 등에서 후보자 가운데 한 명으로 자신을 꼽는 것에 대해서는 "한 분야에 노벨상을 받을 만한 발명·발견이 해마다 10개, 20개씩 쌓인다"며 "(내가 거론되는 것은) 밖에서 보면 조금 우스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앞으로 많은 사람을 길러내는 게 중요하다"고 다시 한번 인재 양성을 강조했다.
ra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