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공공도서관 이어 서점·학교서도 사라지는 톈안먼 책들

입력 2023-05-30 17:38
홍콩 공공도서관 이어 서점·학교서도 사라지는 톈안먼 책들

SCMP "29개 서점서 톈안먼 관련 서적 대부분 없어져"

"학교서는 조지 오웰 동물농장·1984·中작가 루쉰 책도 치워져"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 공공도서관에서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 관련 자료가 사라진 가운데 일반 서점에서도 관련 서적이 자취를 감췄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30일 보도했다.

SCMP는 홍콩 전역의 체인점과 독립서점 등 29개 서점을 조사한 결과 톈안먼 시위 관련 서적이 거의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완차이의 한 중고서점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 활동가이자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가 쓴 시집이 한권 발견됐지만, 그 외 다른 서점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신문은 공공도서관들이 톈안먼 시위 관련 서적과 홍콩 민주 진영 인사들이 쓴 서적, 2019년 반정부 시위 관련 서적 등 잠재적으로 국가 안보 관련 위험을 띤 서적들을 치우자 일선 학교와 서점에도 영향이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학교에서는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과 '1984'도 치워졌으며, 심지어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루쉰의 책을 치우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학교도 있다고 전했다.

앞서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공공도서관들의 검열 조치를 옹호하면서 "치워진 책은 민간 서점에서 접할 수 있다. 여전히 구매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도서관에서 치워진 책들은 29개 주요 서점에서도 대부분 구할 수 없었다고 SCMP는 지적했다.

신문은 "서점 관계자들과 출판업자들은 도서관의 조치가 자신들을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일부 홍콩 작가들은 향후 대만에서 책을 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어 "일부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사라질 위험이 있는 책들을 서둘러 수집하거나 그 책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대만과 영국의 대학 도서관들에 해당 책의 복사본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2020년 6월 30일 홍콩국가보안법이 시행된 직후부터 홍콩 공공도서관들은 민주 진영 작가들의 책을 치우기 시작했으나, 지난달 홍콩 당국이 안보 위험이 있는 도서에 대한 검열 노력을 강화하라고 주문하자 단기간에 많은 책이 사라졌다.

홍콩 당국은 문제가 되는 책의 명단을 공개한 적이 없지만, 도서관 서적 명부를 조사해보니 최소한 수백권의 책이 치워졌으며 최근에는 민주 진영 인사나 학자가 집필한 비정치적 서적도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SCMP는 밝혔다.

한 서점 직원은 "(문제가 있는) 새 책을 해외에서 주문해도 통관에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서점에서는 일본 사진작가가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를 기록한 포토북이 한쪽 구석에 몇 권 놓여 있었는데, 해당 서점 직원은 "이들 책을 눈에 띄는 곳에 전시하지 않을 것이다. 주목받지 않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한 독립서점 주인 제이슨 위는 도서관들이 검열을 강화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책들을 찾는 손님이 늘었다면서 "정부의 조치는 독서의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는 사이렌을 울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앞서 친중 매체 대공보는 전직 구의원 레티샤 웡이 자신이 차린 서점에서 '검은 폭력'에 관한 책을 팔고 반중 사상을 전파하는 행사를 개최한다고 비판했다.

도서관에서 치워진 책들은 대형 서점 체인들에서도 대부분 사라졌다.

한 서점 체인의 직원은 2019년 반정부 시위 이후 각 지점 매니저들의 책 선별권은 박탈당했고 모든 것은 최고 경영진에서 결정한다고 밝혔다.

서점 주인들은 그간 '레드 라인'이 불분명했는데 도서관의 구비 목록이 레드 라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출판업자들은 도서관에서 제거된 책들을 재인쇄하지 않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한편, 다음 달 4일 톈안먼 민주화 시위 34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크리스 탕 홍콩 보안국장은 국가안보를 해치려는 자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전날 기자들에게 "며칠 내 특별한 때에 국가안보를 해치려 계획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에서는 30년간 매년 6월 4일 톈안먼 시위 추모 촛불 집회가 열렸으나, 당국은 2020년 이후 이를 불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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