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신냉전, 구냉전과 차이는…"경쟁하지만 서로 연결돼 있어"

입력 2023-05-26 16:08
미중 신냉전, 구냉전과 차이는…"경쟁하지만 서로 연결돼 있어"

옐런 "미중 디커플링은 재앙적"…디리스킹 개념 부상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미국은 중국과의 디커플링(분리)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앙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달 20일 존스홉킨스대학에서 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경쟁의 속성을 잘 전달한 것으로 국제 외교가는 평가하고 있다.



옐런 장관은 더 나아가 "미국과 중국 경제는 너무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공생의 길을 찾을 필요가 있고, 찾을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냉전기에 활약한 미국 외교계 원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100세를 앞두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인류의 운명은 미국과 중국이 잘 지내느냐에 달려있다"라며 "5∼10년 안에 전쟁을 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와 같은 패권경쟁이 가열될 경우 "향후 5∼10년 안에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지만, 미중 화해의 길을 개척한 그의 과거 행적을 생각하면 공존을 위한 실리적 해법을 주문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경쟁을 과거 냉전 시대의 미·소 관계와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최근 들어 점차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유럽연합(EU)이 강조해온 새로운 대중 접근법인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을 들 수 있다.

디커플링과 대비돼서 최근 많이 언급되는 디리스킹은 중국과 완전히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발 리스크를 관리해나가자는 취지로 제안된 개념이다.

이 개념은 구 냉전 시절 협력의 여지를 철저히 외면했던 미국·소련 관계와 현재의 미국·중국 관계는 근본적인 속성이 다르다는 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이런 논리가 확산하는데 옐런 장관의 발언이 그 속내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실제로 과거 냉전의 두 축이었던 미국과 소련은 군사와 경제, 이념의 영역에서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양국은 세계를 둘로 나누고 분리된 진영 내에서만 내부거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돼있다. 양국 간 무역량은 2021년 기준 이른바 '무역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도 지난 2월 말 현재 8천488억 달러(약 1천124조원)에 달한다.

다만 이 수치는 최고치였던 2013년 1월의 1조3천167억 달러 대비 35.6%나 감소한 것이다.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맞서 중국이 미국 국채 보유량을 급속히 줄이자 미국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옐런 장관의 발언은 미국의 중국을 압박하고 견제할수록 미국도 피해를 보는 이른바 '신(新) 냉전'의 작동원리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냉전과 구냉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두고 새로운 담론이 진행되고 있다. 대립하는 두 강대국이 경쟁하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구냉전에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이나 핵무기 보유고 등을 두고 철저히 분리된 채 경쟁하는 양상이었다면, 신냉전에서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라는 가치의 충돌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경제·국제관계에서 서로 긴밀히 연결된 채 경쟁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자국이 주도하는 세계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퇴출하는 수단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양국 교역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또 대만 문제로 으르렁대면서도 양국 간 고위인사 교류는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은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상무장관 회담을 개최했다. 이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오스트리아 빈 회동(10∼11일) 후 2주 만에 열린 고위급 회담이다.

또 양국은 내달 2∼4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를 계기로 국방장관 회담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미중 간 신냉전의 특성을 잘 이해하면서 양국 간 대결 양상의 추이에 맞는 국익을 지키기 위한 외교전략이 세계 각국에 과제로 던져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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