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로 배우는 백신 관리'…한국, 저소득국 바이오 인력양성 주도
한국 정부, WHO 부대행사 통해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 프로그램 소개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감염병의 위험을 막아줄 백신을 저소득 국가들이 자급할 수 있도록 전문 인력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을 가동 중인 우리나라가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프로그램의 운영 현황을 소개했다.
지영미 질병관리청장이 이끄는 한국 정부 대표단은 23일(현지시간) WHO 194개 회원국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보건총회(WHA) 부대행사로 '현지 바이오 생산 강화: 각국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감염병 유행에 어떻게 대비를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포럼을 열었다.
국제백신연구소(IVI)와 보건복지부가 공동 주관하고 한국, 스웨덴, 브라질, 태국, 르완다, 케냐, 가나 등 7개국 공동 후원으로 제네바 프레지던트윌슨 호텔에서 열린 이 행사는 저소득국의 백신 자급력을 지속가능하게 키워주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에 각국의 바이오산업 역량과 경제력 등에 따라 백신 접근성에 큰 차이가 발생하고, 방역 불평등이 드러난 상황과 맞물려 있다.
이런 문제의 재발을 막으려면 저소득국이 백신 생산 역량을 갖도록 해야 하는데, 단지 생산시설에 투자하고 그칠 게 아니라 백신 제조 및 생산관리 전반을 다룰 수 있는 전문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는 게 국제사회의 지적이었다.
WHO는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작년 2월 한국을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 허브'로 선정했다. 전 세계 2위 수준의 바이오의약품 생산 역량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한국이 중·저소득국의 백신 자급화를 도울 교육기관이 돼 달라는 취지다.
이미 정부는 작년 7월 25개국 138명, 같은 해 10월엔 33개국 230명의 중·저소득국 바이오 인력을 초청해 백신·바이오 의약품 생산 공정을 교육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 각국의 교육생들이 한국에서 백신 생산관리를 배워갔다.
인천 송도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 있는 바이오 생산공정 실습장에서 교육이 진행됐다.
우리 정부 대표단이 주도적으로 이날 행사를 준비한 것도 글로벌 바이오 인력 양성 중추 국가로서 중·저소득국 백신 자급화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개회사를 맡은 지영미 청장은 "지난해 한국은 글로벌 바이오 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됐으며 이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세계 각국이 평등하게 백신에 접근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제롬 김 IVI 사무총장은 "우리는 백신 접근성을 논의하려면 전 세계의 생산 체계를 지원하는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면서 이날 포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포럼에서 황승현 복지부 글로벌백신허브화추진단장은 한국의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 전략에 대해서 설명하고, 인력양성 허브에 대해 소개했다.
송만기 IVI 과학사무차장과 이진우 연세대 부총장 겸 한국형 나이버트(국립바이오전문인력양성센터) 운영단장, 차상훈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등은 오송과 송도, 시흥 등지에서 가동 중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균주를 배양·여과·정제하고 제품을 만들어 검사하기까지 각 공정을 교육하기 위해 어떤 장비와 시설이 사용되고 교육생들은 어떤 단계를 밟아 수료하는지를 소개한 자료들도 참석자들에게 배포됐다.
가상현실(VR)을 구현하는 첨단 교육 기기를 동원해 교육생들이 생생하게 백신 생산 공정을 실습할 수 있는 교육 과정도 소개됐다.
WHO는 백신 자급화를 위해서는 단지 생산 시설을 짓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인력 교육을 비롯한 전반적 지원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러미 파라 WHO 수석 과학자는 포럼에서 "또 다른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하려면 장기간에 걸쳐 투자가 필요하며 몇 년 내에 백신 생산시설을 가동하자는 식으로 할 게 아니라 인력 교육과 법제 정비 등 전반적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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