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찰스3세도 반해버린 'K 정원'…첼시 플라워쇼 韓 작가 '와락'
'지리산에서 영감' 황지해 작가, 쇼가든 분야 출품…11년만의 금상 도전
찰스 국왕 "아이 러브 잇" 찬사…7분간 머물며 정원 안에 들어가기도, 경호원도 '당황'
폴 스미스 등 유명인 줄이어 발길…대관식 플로리스트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감탄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멋지다"고 감탄하며 작가를 꼭 안아주는 등 '첼시 플라워쇼'에서 한국 정원이 주목받고 있다.
22일(현지시간) 개막한 영국 대표적인 정원·원예 박람회 '첼시 플라워쇼'에 우리나라 황지해 작가가 지리산에서 영감을 받은 정원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A Letter from a Million Years Past)를 출품했다.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는 '첼시 플라워쇼'의 얼굴이자 주요 경쟁 부문인 쇼 가든에서 12개 출전작 중 유일한 해외파 작품으로서 개성을 뽐내며 눈길을 끌었다.
찰스 3세 국왕도 정원을 둘러보고는 '정말 맘에 든다'(I love it), '멋지다'(brilliant), '경탄할만하다'(marvellous)라는 등 찬사를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황지해 작가 측에 따르면 찰스 3세는 이날 오후 5시 반께 찾아와서 약 7분간 머무르며 꼼꼼히 설명을 들었으며, 예정과 달리 정원 안에 들어가 보겠다고 해서 경호원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찰스 3세는 커밀라 왕비와 나눠서 둘러보면서 쇼 가든 출전작 중 3개만 방문했고, 그 중 황 작가 작품을 가장 먼저 찾았다.
적극적 관심에 감동한 작가가 마지막에 "안아봐도 되냐"고 물어보자 찰스 3세는 "물론이다"라고 답하고 웃으며 포옹해주기도 했다.
영국에서 국왕 등 왕실 인사들이 일반 대중과 악수 이상 접촉을 하는 일은 흔치 않다.
현장에 있던 BBC 취재진은 황 작가에게 "국왕이 정원 안으로 들어가다니 당신에게 특별한 날"이라며 "포옹을 한 상황도 사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오전엔 유명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거의 1시간 둘러보고는 "완전히 자연적이고, 멋진 돌들이 있고 희귀 식물이 있다"며 "정말 특별하다"고 감탄했다.
그는 황 작가가 2012년 첼시 플라워쇼에서 'DMZ:금지된 정원'으로 전체 최고상(회장상)과 금상을 동시 수상한 이래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왔다.
그는 "훌륭한 재능에 끌렸다"며 "디테일에 집중하는 것은 내가 작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폴 스미스는 다른 한국 정원들을 가봤냐는 질문에 "한국의 전통 가옥인 한옥과 작은 정원들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BBC의 창업 리얼리티 쇼에 고정 출연해 널리 알려진 기업인 데버러 미든은 "흔치 않은 정원이다. 대개 같은 식물을 다른 방식으로 조성하는데 여긴 완전히 다른 식물이 있고 다른 향이 난다"며 "마치 설계해서 만든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정원 같다"고 말했다.
찰스 3세 대관식의 플로리스트인 셰인 코널리는 "매우 정교하고 탁월하다"며 "다른 정원들과 달리 영원할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원 앞에서 열린 국악 연주도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았다.
'백만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는 지리산 동남쪽 약초군락을 모티브가 됐으며, 약초와 원시적 형태의 자연 풍경을 통해 환경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지리산에만 있는 지리바꽃, 멸종위기종인 나도승마, 산삼, 더덕 등 토종 식물 등 식물 300여종과 총 200t 무게의 바위들로 가로 10m, 세로 20m 크기 땅에 지리산의 야성적인 모습을 재현했다.
바위 사이엔 지리산 젖줄을 표현한 작은 개울이 흐르고, 중심엔 지리산 약초 건조장을 참고해 만든 5m 높이 탑이 서 있다.
황 작가는 "20억년 넘는 시간을 상징하는 바위의 밑에서 자라는 작은 식물들이 백만년 전에서 온 편지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리산 약용식물의 가치와 이들을 키워낸 독특한 환경을 보여주면서 자연과 인간의 공생, 다음 세대를 위한 행동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익숙한 것을 연출했는데 여기선 매우 다르게 여겨진다. 첼시 플라워쇼 스타일의 정원은 달력 그림 같다"며 "거친 자연을 접하기 어렵다 보니 지리산의 원시적인 매력이 부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한국과 영국의 재료와 솜씨가 어우러졌다.
식물 절반 이상은 웨일스의 농장에서 가져왔다. 농장주 부부는 30년 전부터 제주도와 울릉도부터 DMZ까지 전국을 누비며 한국 식물을 채종해와서 키웠다.
바위는 스코틀랜드산이고 건조탑은 스코틀랜드 출신 장인이 자연 채취한 점토, 짚, 모래, 말똥 등으로 제작했다.
이는 올해 '첼시 플라워쇼'가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데 맞춘 것이기도 하다.
황 작가는 콘크리트 등을 쓰지 않고, 작품 속 식물은 노팅엄 매기 암센터로 옮기거나 일부 판매, 기부하는 방식으로 재사용한다.
쇼 가든 경쟁자는 금상을 14번 받은 크리스 비어드쇼, '첼시 쇼'의 왕으로 불리는 마크 그레고리, 런던올림픽 공원을 설계한 새러 프라이스 등이다. 결과는 23일 오전에 발표되고 폐막은 27일이다.
'첼시 플라워쇼'는 영국 왕립원예협회(RHS) 주최로 1913년 시작됐으며, 런던 남서부 부촌 첼시 지역에 템스강과 접한 4만5천㎡ 규모 부지에서 열린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매년 방문하는 등 왕실과 관계가 깊다.
하루 입장권 가격이 회원 기준 약 58파운드(약 9만5천원)에 달하는데도 총 약 16만8천명이 방문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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