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폭력으로 얼룩진 예루살렘 '깃발 행진'…아랍권 반발(종합)
이스라엘 시위대, 反팔레스타인 구호…곳곳에서 충돌
네타냐후 "예루살렘 영원히 분리되지 않을 것"…팔 자치정부 "우리의 영원한 수도"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동예루살렘 점령을 기념하는 이스라엘 우파들의 예루살렘의 날 '깃발 행진'이 올해도 증오와 폭력으로 얼룩졌다.
18일(현지시간) 일간 하레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예루살렘 구시가지 일대에서는 수만 명의 이스라엘 우파 지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깃발 행진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며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통과해 유대인들에게 기도가 허용된 통곡의 벽까지 행진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아랍에 죽음을", "유대인은 영혼, 아랍인은 창녀의 자식" 등 혐오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일부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향해 "너희 마을이 불탈 것"이라는 섬뜩한 협박도 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내 이슬람교도 구역인 무슬림 쿼터에서는 이스라엘 우파 청년들과 팔레스타인 주민 간에 크고 작은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또 구시가지로 진입하는 다마스쿠스 게이트 광장에서는 행진 참가자들이 이슬람권 매체의 기자들을 공격하거나 취재를 방해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대표적인 극우성향 정치인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과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 등 우파 연정 소속 정치인들도 다수 참석했다.
벤-그비르 장관은 "오늘 행사에 수만 명이 참석했다. 신께 감사드린다"며 "예루살렘은 영원히 우리 땅"이라고 말했다.
일부 행진 구간에서는 유대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극우단체 '레하바'(불꽃)의 깃발도 눈에 띄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행진을 마친 참가자들 앞에서 "치안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행진이 예정대로 진행되도록 했다"며 "예루살렘은 영원히 분열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극우 성향의 일부 장관들과 의원들은 이날 아침에 이슬람 3대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 경내를 기습 방문해 이슬람권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날 동예루살렘 성지에 팔레스타인 주민 소집령을 내리며 긴장을 고조시켰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는 강경 대응하지 않았다.
다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분리장벽 등에서 이스라엘에 대응한 자체적인 깃발시위를 진행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의 대변인인 나빌 아부 루데이네는 "예루살렘은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신성함을 품은 팔레스타인의 영원한 수도"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중재해 온 이집트는 깃발 행진과 정치인들의 성지 방문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무책임한 행위라며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알아크사 사원 관리권을 가진 요르단과 아랍에미리트(UAE) 등 아랍권 국가들도 정치인들의 성지 방문을 규탄했다.
깃발 행진은 이스라엘의 우파와 민족주의 세력이 국기를 들고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도는 연례행사다.
1967년 3차 중동전쟁(일명 6일 전쟁)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요르단에 속해있던 동예루살렘을 장악한 것을 기념하는 '예루살렘의 날'에 열린다.
팔레스타인 주민을 비롯한 이슬람교도 입장에서는 3차 중동전쟁에서 패하고 성지인 동예루살렘까지 빼앗긴 치욕스러운 날에 열리는 셈이다.
깃발 행진은 매년 이스라엘 우파와 팔레스타인 주민 간의 갈등을 촉발했다.
지난 2021년에는 라마단 성지 갈등과 깃발 행진이 맞물리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11일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 행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닷새간 무력 충돌이 일단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열려 우려를 낳았다.
이스라엘 경찰은 행진 참석자들과 팔레스타인 주민 간의 대규모 충돌을 막기 위해 예루살렘 구시가지 일대에 3천여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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