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반격 시작도 안했는데…러 사분오열 갈수록 심화
정규군-용병 갈등 위험수위…우크라에 아군정보 제공 제안설도
"내홍에도 푸틴 권좌는 굳건…여러 파벌 경쟁시켜 본인 입지 강화"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우크라이나가 침략군을 몰아내기 위한 대반격 태세를 갖추는 가운데 러시아군의 사분오열 양상이 더욱 확연해지고 있다.
전투에 투입된 용병들과 정규군 간의 불화는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인해전술로 병력을 낭비한 탓에 격전지 바흐무트 등에선 벌써 전선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러시아 내 기지에서 출격한 주력 전투기와 수송 헬기들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기도 전에 대공미사일에 대거 격추되는 충격적 사건도 벌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난맥상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간) 전했다.
정부 조직과 휘하 세력을 의도적으로 갈라놓고 상호 견제시키는 '분열의 정치'를 해 온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권좌 보전을 위해 치러야 할 일종의 '비용'에 불과할 수 있어서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롭 리 선임연구원은 NYT에 "푸틴이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의 하나는 여러 파벌을 두고 이들이 서로 경쟁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건 정치적으로는 말이 되지만, 군사작전에는 매우, 매우 해가 된다"고 짚었다.
이번 전쟁 최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를 점령하려는 과정에서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그룹과 국방부가 보인 갈등상은 러시아 군사조직들이 성공적으로 협력해 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케 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전략적 가치가 크지 않다는 지적에도 바흐무트 점령에 인력과 물자를 말 그대로 '쏟아부은' 반면,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에 대비해 전력 보전에 집중하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왔다.
리 연구원은 "이번 전쟁 내내 지휘체계 통일 문제가 있었다. 푸틴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 하나 이건 많은 문제를 만들어냈다"면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에 직면했을 때 러시아 정규군과 용병들이 서로 구원에 나설지조차 불명확하다고 짚었다.
심지어 최근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입수한 미 정부 기밀문건에는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군에 러시아 정규군의 위치를 알려주겠다며 바흐무트에서 철수할 것을 제안했다는 내용까지 들어있었다.
프리고진은 이러한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일축했으나, 러시아 전승절(제2차 세계대전 승전일)인 이달 9일 이전 바흐무트를 점령한다는 목표 달성에 실패한 이래 러시아군 지휘부에 대한 비판 강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러시아 엘리트들 사이에선 정부의 능력에 의문을 갖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으로 NYT 취재에 응한 러시아 유력 사업가는 프리고진이 "(정부를) 완전히 허술하고 어리석고 바보처럼 보이게 하고 있으며, 점점 더 그것이 정말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로 인해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유의미하게 훼손되거나 전쟁 동력이 약화할 것이라고 전망하긴 힘들어 보인다.
NYT는 "충성심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푸틴은 자신을 직접 위협하지 않는 한 전쟁 지도자들이 상호 저격을 주고받는 걸 참아 넘기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엘리트층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분위기이고, 일반 대중도 '강력한 외부의 적에 러시아가 위협받고 있다'는 선전전에 경도돼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규군과 용병들은 앞으로도 한동안 갈등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 센터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선임연구원은 여러 논란에도 크렘린궁은 프리고진의 언행에 유감을 표하지 않았다면서 전례에 비춰볼 때 이는 푸틴 대통령이 그를 정치적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hwangc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