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거리두기' 나선 EU…어르고 달래지만 속 타는 中

입력 2023-05-15 16:17
중국과 '거리두기' 나선 EU…어르고 달래지만 속 타는 中

EU, 우크라전에 중국 태도변화 요구…대만문제 개입 의지도

獨·佛·伊 포함 G7, 정상회의서 中 '경제적 강압' 대응 성명 예상

中, 대유럽 외교 총공세…실리 앞세워 미국에 가담 차단 주력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유럽연합(EU)이 최근 중국과의 '거리두기'를 본격화하면서 중국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미·중 간에 갈수록 경제·안보를 연계한 갈등과 대립이 고조되는 가운데 EU가 미국 편에 가세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어서다.

그동안 미국의 공세에도 완충지대 역할을 해온 EU가 근래 '태세 전환'이 분명해지자 중국으로선 비빌 언덕을 잃고 있다.



◇ EU, 대만 문제·우크라이나전에 중국 전향적 태도 요구 = 최근 EU는 대만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의 태도를 문제 삼고 있다.

외신을 종합하면 EU 대외관계청은 지난 주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EU 외교장관 이사회에서 관계국과 협력해 대만 유사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대(對)중국 전략문서 초안을 배포했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 EU 차원의 입장 모으기 시도는 이례적이다.

EU는 다음 달 열릴 EU 정상회의에서 해당 전략문서 채택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입수한 EU의 대중국 전략문서에 따르면, 대만 문제와 관련해 '하나의 중국' 원칙 유지라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중국을 겨냥해 "일방적 현상 변경과 무력행사는 세계 경제·정치·안전 보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는 EU 차원에서 중국의 침공 등 긴급한 상황에 관여하겠다는 방침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아울러 "특히 최첨단 반도체를 공급하는 대만의 주요 역할을 고려할 때 일방적 현상 변경과 무력 사용에 거대한 경제·정치·안보적 후과가 있을 수 있다"는 문구를 더함으로써 EU가 느끼는 불안감을 명시했다.

EU가 수입하는 반도체의 90%가 대만산으로 알려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EU가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 대해 선별적 디커플링(탈동조화)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다.

미국과 입장이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반도체·인공지능(AI)·우주기술 등 미래 첨단산업과 관련해선 중국을 규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중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경우 "(중국과) EU의 관계는 결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략문서 초안에 명시한 점도 눈길을 끈다.



실제 EU는 중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을 돕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본토 기업인 3HC 반도체·킹 파이 테크놀로지와 홍콩 기업인 신노 일렉트로닉스·시그마 테크놀로지·아시아퍼시픽링크·토단 인더스트리·알파 트레이딩 인베스트먼트 등 총 7개 사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고 있다.

EU의 이런 제스처는 중국이 러시아 편들기를 지속한다면 묵과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미국의 압박을 러시아와의 전략적인 연대로 돌파하려는 중국으로선 매우 곤혹스러운 지점이다. 중국은 자국 기업들에 대해 EU가 제재를 현실화하면 맞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EU 3개국 포함된 G7, '경제적 강압' 대응 모색도 中에 부담

EU의 주축인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3개국이 포함된 주요 7개국(G7)의 행보도 중국으로선 부담스럽다.

G7 정상들은 이달 19∼21일 일본 히로시마 정상회담에서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에 우려를 표시하는 성명을 낼 것이라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성명에 중국이라는 국가 명칭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겠지만, 사실상 중국을 겨냥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문제는 G7의 행보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G7 정상회의에 이어 이달 25∼26일 미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 회의를 포함해 향후 지속해서 중국을 겨냥한 경제적 강압 대응책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EU와 G7 회원국들은 일정 수준 가세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구체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을 겨냥한 징벌적 관세, 중국을 뺀 리튬·희토류 등 주요 광물 공급망 재편 등도 현실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현재로선 프랑스가 중국과 관련해 미국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고, EU 회원국 내에서 중국에 유화적인 국가가 적지 않아 EU와 G7이 '일치된 대응'을 하기는 쉽지 않다.

프랑스는 지난달 5∼7일 중국을 방문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주도로 '중국 감싸기'를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안나레나 배어복 외교장관이 앞장서 중국 때리기에 나섰던 독일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을 빌미로 한 대중국 제재에 신중론을 펴왔고 여기에 이탈리아도 가세하고 있다.



이 때문에 히로시마 G7 정상회의가 중국에 맞선 회원국들의 단결을 확인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 발등에 불 떨어진 中, 외교 총공세로 유럽 설득 = 이전과는 다른 유럽의 분위기에 중국도 다급해졌다.

지난주 행선지는 달랐지만 한정 국가부주석과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당 중앙 외사판공실 주임), 친강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모두 유럽으로 날아가 중국의 입장을 설파하고 지지를 구하는 '외교 총공세'를 펼친 데서도 중국의 절박한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

중국은 미국 주도로 진행되는 경제적 강압 대응책이라는 명분 하의 사실상 대중국 제재에 EU가 가세하는 것을 차단하는 한편 EU와 G7의 핵심국인 독일·프랑스 등을 설득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들 국가가 안보적으론 미국과의 협력이 불가피하지만, 경제적으론 중국과 교역을 통해 더 많은 실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고 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보면 한정 국가부주석은 10∼12일 네덜란드를 방문해 '공급망 안정'의 중요성을 거론하면서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에 동참하지 말아 달라고 촉구했다.

네덜란드는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세계 1위 노광장비 기업 ASML을 보유한 국가다.

왕이 정치국 위원은 10∼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회동해 미·중 간 주요 외교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친강 외교부장은 8∼12일 독일, 프랑스, 노르웨이를 잇달아 방문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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