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정박 '레이디R' 뭐했나…"제3국 무기 선적 가능성"(종합)
의혹제기 美대사 "선 넘었다" 사과…양국 외교수장 진화 나서
사실관계 확인 전까지 '러 무기제공 의혹' 논란 이어질 전망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공개 기자회견으로 의혹을 제기한 주남아공 미국 대사가 스스로 "선을 넘었다"며 공식 사과하고, 양국 외교 수장이 전화통화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며 진화해 나섰지만, 사태가 좀처럼 수습되지 않는 양상이다.
루번 브리지티 남아공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현지 언론매체만 초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폭탄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작년 12월 6∼8일 (남아공 남부) 케이프타운의 사이먼스타운 해군기지에 정박한 러시아 화물선 '레이디R'에 주목하고 있다"며 "이 선박이 무기와 탄약을 싣고 러시아로 돌아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목숨도 걸 수 있다"고 하는 등 주재국 대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남아공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무기 공급을 승인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브리지티 대사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에 우려를 표명했다.
훔부조 응트샤베니 대통령실 장관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을 공식 허가한 적이 없다"면서 "무기가 선박에 실렸다면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그런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불법 무기 선적의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고 현지 일간지 더시티즌이 13일(현지시간) 전했다.
의혹의 중심에 있는 러시아 선적 화물선 '레이디R'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 말 남아공 야당이 미국의 제재 대상 선박이라며 자국 해군기지 정박에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탄디 모디세 국방장관은 "코로나19 유행 이전에 주문한 남아공 특수부대를 위한 탄약 하역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남아공 특수부대는 서방과 구소련의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데 구소련 무기를 위한 탄약이었다는 설명이다.
모디세 장관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브리지티 대사의 주장은 거짓인 셈이다.
실제 현지 군사 전문가 헬뫼드로머 하이트만은 "사이먼스타운에서 화물이 선적되는 것을 목격했다는 사람은 아직 없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선박에서 화물을 빼내 트럭으로 사이먼스타운 밖으로 반출하는 것을 봤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이트만은 또 "러시아군이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무기를 남아공이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과거에도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한 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하이트만은 "군용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이중용도 물자가 남아공 정부가 모르는 사이에 밀반입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3국의 무기가 남아공 항구에서 현지 정부도 모르게 문제의 레이디R에 실렸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남아공 정부가 몰랐다고 하더라도 해군기지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남아공 정부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다만, 최근 미국을 다녀온 시드니 무파마디 남아공 대통령실 국가안보특별보좌관은 이날 온라인브리핑을 자청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분쟁에 관한 한 우리는 정말 적극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러시아에 무기를 비롯한 전쟁 물자를 공급한 국가들에 미국 시장 접근을 거부하는 등 제재를 경고해 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작년 12월 8일 남아공 사이먼스타운을 출항한 레이디R은 모잠비크 베이라항(1월 7∼11일), 홍해 연안의 수단 포트수단 등을 거쳐 지난 2월 16일 흑해에 있는 러시아의 노보로시스크항에 도착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이 임명한 퇴직 판사가 주도하는 위원회의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브리지티 대사가 제기한 의혹의 사실관계가 명백히 밝혀질 때까지 레이디R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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