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보고서, 과열에 투자의견 이례적 줄하향…작년의 3배
한달간 26개 종목 투자의견 '매수' 철회…에코프로비엠에 집중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기자 = 최근까지 이어진 증시 과열에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던 증권사들조차 상당수 종목의 투자의견을 줄줄이 낮추는 이례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총 34건의 증권사 보고서가 총 26개 종목에 대해 투자의견을 낮춰 매수 권고를 철회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9개 종목에 대해 10개 보고서가 투자의견을 낮춘 것에 비하면 각각 세 배 정도씩 늘어난 셈이다.
투자의견 강등이 집중된 종목은 역시 2차전지 대장주인 에코프로비엠이었다.
지난달 BNK투자증권을 시작으로 교보증권[030610], 하이투자증권, 삼성증권[016360], 유안타증권[003470], 대신증권[003540] 등 6곳이 매수 의견을 거두고 중립으로 투자의견을 낮췄다.
유진투자증권[001200]은 아예 매도 의견을 냈다. 한병화 연구원은 지난 3일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에코프로비엠의 성장이 우리 회사의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가정하에 20만원 이상의 주가는 고평가라고 판단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에코프로[086520]에 대해서도 매도 보고서가 나왔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12일 보고서에서 "현재 시가총액이 5년 후 예상 기업가치를 넘어섰다"며 "동종업계 기업 중 미래에 대한 준비가 가장 잘 된 위대한 기업이지만 (당시 시점 기준) 좋은 주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증권사들은 '에코프로 형제주'뿐 아니라 POSCO홀딩스[005490]와 한미반도체[042700], 한미약품[128940] 등에 대해서도 기업의 펀더멘털(기초여건)보다 일시적 수급 쏠림현상으로 현재 주가가 과도하게 올랐다는 점을 지적하며 중립으로 투자의견을 내렸다.
통상 투자의견은 목표주가 대비 현 주가의 상승 여력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증권사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해당 종목의 코스피 대비 향후 6∼12개월 기대수익률이 10% 이상일 때는 매수를, -10∼10%일 때는 중립(보유)을 제시한다. 향후 기대수익률이 마이너스일 경우는 매도 의견을 낸다.
국내 증시는 연초부터 지난달까지 예상보다 가파르게 오르면서 2차전지 등 특정 테마를 중심으로 과열 양상이 나타났다. 이에 주가 상승 여력이 줄어든 종목들을 중심으로 증권사들이 대거 투자의견을 낮춘 걸로 보인다.
그밖에 아모레퍼시픽이나 대한항공[003490], CJ ENM[035760] 등은 업황 개선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로 일부 증권사가 '매수' 의견을 철회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최근과 같은 투자의견 줄하향이 이례적인 현상으로 여겨진다.
애널리스트들이 자유롭게 투자의견을 낮추지 못하는 배경 중 하나는 증권사의 영업구조에 있다.
증권사로서는 기업들이 분석 대상인 동시에 기업금융(IB) 사업파트의 주요 고객이다 보니 고객사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투자의견을 제시하기 어렵다.
또 보고서를 작성하는 리서치센터는 직접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사업부가 아닌 만큼, 큰 수익을 내는 IB 사업부보다 조직 내 '입김'이 약하다는 점도 한계다.
이렇다 보니 국내 증권사의 장밋빛 전망 행태는 국내 기업에 상대적으로 잦은 매도 의견을 내온 외국계 증권사와 대비되기도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외국계 증권사의 경우 국내 기업들과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적기 때문에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라며 "그들도 자국 기업에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투자의견을 낸다"고 밝혔다.
또 "외국계 증권사에 비해 국내 연구원들의 신상 정보가 많이 노출돼 있고 부정적인 투자의견을 냈을 때 개인 투자자들의 항의와 민원, 심지어 당국의 조사까지도 감당해야 한다"며 "단순히 연구원 개인의 소신이 부족하다고 탓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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