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실크로드 발원지서 일대일로 '재부팅'…美, 전방위 차단
'시진핑 집권 3기' 중국, 18일 중앙아 5개국 초청 시안 정상회의
미국, 인도·사우디·UAE·이스라엘과 중동 철도망 건설 추진 중
中의 일대일로 확장 맞선 美, 민주주의 후퇴 인도에 '프리패스'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집권 3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시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드라이브를 가속하자 미국이 전방위 차단에 나서 주목된다.
최근 외신 보도를 종합해보면 시 주석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재가동에 맞서 미국은 인도·태평양 강화에 더해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을 다지고 있다. 여기에 중동 국가는 물론 인도와의 협력 강화로 대(對)중국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 중국, 미국 패권 맞서 '일대일로 재부팅' =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미국의 패권적 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의 '첨병'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을 포위·압박하는 방패라면, 일대일로는 이를 뚫으려는 창으로도 비유된다.
결국 일대일로를 둘러싼 미·중 다툼은 패권 경쟁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미국으로선 용납하기 쉽지 않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시진핑 주석이 제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계기로 집권한 이듬해인 2013년부터 시작됐다.
수십 년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경제·군사·외교적 힘을 키운 중국이 이전의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숨긴 채 실력을 키움)에서 벗어나 대국굴기(大國?起·대국이 일어난다는 의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시 주석의 상징적인 프로젝트였다.
그렇지만 지난 10년을 거슬러보면 일대일로는 외국 현지 여건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중국 이익에만 초점을 맞췄던 탓에 돈을 지원받은 개발도상국 상당수를 '채무의 덫'으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영향으로 최근 1∼2년 새 중국 당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추진이 주춤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작년 10월 제20차 당대회를 거치면서 내부 견제 세력을 대부분 제거해 사실상 '1인 체제'를 구축한 시 주석은 다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재부팅하고 있다.
이달 18∼19일 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국을 초청한 6개국 정상회의가 그 시작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실크로드의 발원지 격인 고도(古都) 시안에서 이들 5개국과 일대일로 협력 확대를 논의함으로써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새 동력을 불어넣을 예정이라고 중국 관영 매체들이 8일 보도했다.
이들 5개국은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친중·친러시아 국가들로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일대일로의 일대(一帶)는 중국 서부-중앙아시아-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 일로(一路)는 중국 남부-동남아시아 바닷길-아프리카-유럽으로 이어지는 해상 실크로드를 의미한다.
중국은 지난 6일 친강 외교부장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로 보내 서방으로부터 외면받아온 탈레반 집권 아프가니스탄을 일대일로의 주요 프로젝트인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CPEC)'에 참여시키는 합의를 끌어냈다.
중국 안팎에선 중앙아 5개국 초청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고삐를 바짝 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美, 중동에 철도망 건설·인도의 중국 견제역량 강화 = 중국에 대응하는 미국의 움직임도 눈길을 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최근 한국과 일본 간 화해를 유도, 외교관계 정상화를 끌어냄으로써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대만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확대해 중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은 아울러 최근 대(對)중동 영향력을 부쩍 키우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인도와 공동 인프라 프로젝트를 협의 중이라고 미 온라인매체 악시오스가 지난주 보도했다.
이를 위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3국의 대화 상대방과 만나 관련 철도망 건설을 논의한다고 덧붙였다.
사우디 국영 통신사 SPA도 설리번 보좌관이 7일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났다고 전했다.
애초 중동 철도망 구상은 미국과 인도·이스라엘·UAE 간 협의체인 'I2U2' 회담에서 제안됐으나,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추가됐다고 AP가 전했다. 이 사업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견제할 목적으로 고안됐다고 AP는 덧붙였다.
실제 중국은 수십 년간 앙숙이었던 사우디와 이란을 중재해 지난 3월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도록 하는 등 중동에서 영향력 확대에 주력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미 행정부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의 맹주 격인 사우디와 협력을 추진 중이다. 사우디가 최고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 주도로 미국에 자주 '반기'를 드는 상황에도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에 대한 미국의 '관용'도 눈길을 끌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종교·언론 탄압을 자행하고 야당 정치인을 표적 삼아 공격하는 등 인도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지만,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여름 모디 총리를 국빈 초청하기까지 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상 인도의 지정학적·경제적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인도가 중국 덕에 '프리패스'를 얻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블룸버그는 시 주석 주도의 중국에 대한 경제·안보 우려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 미국과 인도를 가깝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 中, 미국의 대중 압박에 유럽 가세 가능성 촉각 = 이런 가운데 중국은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대중 압박에 동참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초 중국 방문을 계기로 '대만과 거리두기' 발언을 하고 중국과 협력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할 평화 협상을 중재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자 중국은 크게 반색했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의 이런 접근은 유럽연합(EU) 회원국 내에서 호응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유럽에서 유일한 일대일로 참여국인 이탈리아가 최근 프로젝트 이탈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도 중국으로선 부담스럽다.
무엇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전 수행을 돕는 중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고 나서면서 중국은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에릭 마메르 EU 집행위 대변인은 현지시간 8일 "EU 회원국들에 11차 제재 패키지 초안을 제안했다"고 밝혔으며, 이 방안이 확정되면 중국 소재기업 최소 7곳에 대한 핵심기술 수출 금지 조치가 현실화할 수 있다.
제재 대상은 '3HC반도체', '킹 파이 테크놀로지' 등 중국 본토에 있는 기업 2곳, '신노 일렉트로닉스', '시그마 테크놀로지', '아시아퍼시픽링크', '토단 인더스트리', '알파 트레이딩 인베스트먼트' 등 홍콩 기업 5곳이다.
이에 중국은 보복성 조치도 배제하지 않고 있으나, 이런 충돌로 인해 EU가 미국의 대중 압박에 가세할 가능성을 더 우려하는 것으로 보여 대응 수위가 주목된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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