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년] ⑩ '반도체에 국운 달렸다'…첨단산업 육성으로 활로
경기침체 속 첨단산업 글로벌 경쟁 치열…반도체 수출마저 휘청
국가첨단산업 육성 전략…미래먹거리 확보 위한 '방향타' 설정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민다…尹대통령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자처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첫 1년은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高)' 등 어려운 대외 환경과 맞물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물가가 치솟자 미국 등 주요국은 앞다퉈 기준금리를 올렸고, 한동안 달러 강세가 이어지며 국내 산업계는 '퍼펙트 스톰'(복합위기)에 신음했다.
또 미중 패권 다툼 등 첨단 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반도체 등 첨단산업으로 '돌파'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3월 15일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국가첨단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하며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방향타를 설정했다.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산업 전쟁의 필승 전략이기도 하다.
수도권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해 전국 15개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미래차, 바이오, 로봇 등 미래 먹거리 산업 6대 분야에 2026년까지 550조원 규모의 투자를 유도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회의에서 "현재 글로벌 경쟁 상황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며 첨단산업 육성 의지를 밝히면서 민간 투자를 위한 정부의 확실하고 빈틈없는 지원을 강조했다.
◇ 반도체 클러스터 '실리콘쉴드' 기대…"총이 아닌 반도체가 전쟁한다"
첨단산업 육성전략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경기 용인에 들어설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다.
기흥·화성·평택·이천 지역 반도체 생산단지와 인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판교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밸리와 연계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구성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 감소와 무역적자 등 거센 풍랑을 첨단산업 육성으로 넘는다는 것이다.
실제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2020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5.6%, 총수출액의 19.4%를 반도체 산업이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갈수록 짙어지며 버팀목이 휘청이는 상황이다.
4월 반도체 수출액은 63억8천만달러로 작년 같은 달보다 41.0% 감소했다. 반도체 한 품목에서만 수출이 44억달러 줄어들었는데, 4월 전체 수출 감소액인 82억달러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반도체가 무너지면 한국의 성장 엔진이 식고, 안보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클러스터는 '실리콘 쉴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반도체가 국가 안보의 방패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반도체 초강대국'을 제시했다. 당선 직후 경제6단체장과의 간담회에선 "요즘 전쟁은 총이 아닌 반도체가 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첨단산업 육성 의지를 강조했다.
이에 맞춰 정부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목표로 투자 등 기업 활동 지원에 나섰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설비투자 세약공제율을 최대 25%까지 상향한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대표 사례다.
◇ "첨단산업은 전략자산"…기업들 '미래성장' 투자 가속화
첨단산업을 국가의 핵심 성장엔진이자 안보 전략자산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지속적인 입장 표명에 기업들도 호응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어렵지만 미래 성장을 위해 선제적 투자에 나선 모양새다. '초격차 기술' 확보를 통한 경쟁력 강화 전략이기도 하다.
당장 삼성전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향후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30년까지 8년간 국내 전기차에 24조원을 투자해 전기차 판매 글로벌 3위권 업체가 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달 11일 기아의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윤 대통령은 '글로벌 미래차 3강' 도약 의지를 밝히면서 "기업들이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배터리 업계 역시 팽창하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 대응해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배터리 생산 능력 확대는 물론,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 핵심 광물·소재의 안정적 확보 등을 위한 것이다.
배터리 업계의 미국 투자 확대도 눈에 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염두에 둔 전략적 투자지만, 한미 간 글로벌 공급망 공조를 잇는 단단한 고리로 자리매김했다.
◇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세일즈 외교·한미 기술동맹도 강화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윤 대통령은 세일즈 외교도 강화하고 있다.
올해 1월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다보스포럼 순방부터는 기업인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경제사절단과 함께 글로벌 수출·수주 지원에 나섰다.
최근 미국 국빈 방문에서는 첨단기술과 공급망을 둘러싼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는 데 주력했다.
양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주도하는 협의체인 '차세대 핵심·신흥기술 대화' 신설이 대표적 결과물로 꼽힌다. 한미는 이를 통해 바이오, 배터리, 반도체, 디지털, 양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도모하면서 첨단기술 분야의 표준을 함께 마련하는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양국은 또 민관 공동 참여 포럼인 '한미 반도체 포럼'을 신설하기로 하는 등 경제안보의 핵심인 반도체 부문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미동맹이 기존 안보 중심에서 산업·과학기술 등의 분야로 확장된 셈이다.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흐름 속에 한미 양국이 공급망 협력를 강화했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일정부분 해소된 측면이 있다.
한편 '첨단산업 육성 전략'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민간의 투자뿐 아니라 정부의 연구개발·인력·세제 지원뿐 아니라 법·제도 정비를 통한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당장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공급망'이 핵심 이슈인데, 정작 공급망 안정을 위한 '공급망 3법' 등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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