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도 식량도 없이 사막에…" 피란민 넘쳐나는 수단 국경 참혹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3주째로 접어든 수단 군벌 간 무력 분쟁에서 벗어나기 위해 길을 떠난 피란민들이 이웃 국가로 가는 국경에서 참혹한 상황에 놓였다.
2일(현지시간) AP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수단에서 이집트, 남수단, 차드,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으로 출국하려는 난민들이 몰리면서 국경 지역에 수천∼수만 명이 줄을 선 상태다.
수단-이집트 국경 검문소가 있는 와디 할파에는 수천가구의 피란민들이 버스 또는 인근의 허름한 숙박시설에서 밤을 지새우며 출입국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대학생 유수프 압델-라힘은 국경 지역에서 며칠을 보낸 끝에 지난 1일 가족과 함께 어렵사리 아시킷 검문소를 통과해 이집트로 들어왔다.
애초 그의 가족은 나일강 건너편에 있는 아르긴 국경 검문소에 갔다가 출입국 수속 대기 중인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발길을 돌렸다.
압델-라힘은 "아르긴 검문소는 혼돈 그 자체"라며 "여성과 아이들, 환자들이 식량도 물도 없이 사막에 갇혀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는 최근 하르툼에 있는 이웃과 전화 통화를 했다면서,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자신의 집을 포함해 민가를 약탈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그는 "군인들이 들이닥쳤을 때 우리가 집에 없었다는 건 행운이다. 우리도 차가운 시신이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가족과 함께 쿠수툴 국경 검문소를 어렵사리 통과했다는 임신 8개월 차 여성 말라즈 오마르(34)는 나흘 동안 먹지도 씻지도 못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국경 검문소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은 땅바닥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뜨거운 태양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국경 인근 아부심벨의 식당에서 튀긴 생선으로 허기를 채운 그는 "빈속에 진통제만 먹었다.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유엔은 지금까지 수단 무력 분쟁 기간 발생한 난민은 약 3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4만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이집트로 갔다.
이집트 정부는 수단 피란민들을 위해 최근 입국 조건을 간소화했다.
여성과 15세 미만 아동, 50세 이상 남성은 여권과 백신 접종 증명서만 있으면 비자 없이도 입국이 가능하고, 16∼49세 남성은 추가로 비자도 받아야 한다.
수단 정부와 이집트 정부가 국경 지대에서 여권과 비자를 발급하고 있지만, 몰려드는 피란민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업무 처리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는 상황이다.
인근의 다른 국가로 넘어가는 검문소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의 폴 딜런 대변인은 "수단 국경 지대에서는 아주 빠르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수단-에티오피아 국경에는 하루 900∼1천명가량의 피란민이 도착한다. 식량과 물, 쉼터, 의료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제구조위원회(IRC)의 차드 담당 국장인 알렉산드라 불렛-심프릭은 "엄청난 폭염에 여성과 아이들이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다"며 "그들은 착취와 학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국경을 넘어 차드로 간 수단 피란민은 최소 2만명으로 추산된다.
수단 군부 지도자인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RSF 사령관은 2019년 쿠데타를 일으켜 30년간 장기 집권한 오마르 알바시르 전 대통령을 축출하고 2021년에는 과도 정부를 무너뜨리며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이들은 민정이양 협상 과정에서 이견을 드러내며 반목하기 시작했고, RSF의 정부군 통합 문제를 둘러싼 갈등 끝에 지난달 15일부터 무력 충돌했다.
여러 차례 휴전 합의까지 깬 양측의 치열한 교전으로 지금까지 500명 이상이 사망했고, 4천여명이 부상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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