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대관식] 본격 개막한 찰스3세 시대…왕실 현대화·가족문제 해결 과제

입력 2023-05-06 06:00
수정 2023-05-08 08:46
[英대관식] 본격 개막한 찰스3세 시대…왕실 현대화·가족문제 해결 과제

즉위 후 8개월 평가 무난…왕실 이미지 관리 공들여

군주제 지지·영연방 구심력 확대…젊은층·소수민족 무관심 극복해야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은 6일(현지시간) 대관식을 통해 왕위 교체를 만방에 알리면서 찰스 3세 국왕의 시대로 본격적으로 접어들게 됐다.

역대 최장기 왕세자에서 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새 군주로 등극한 찰스 3세에게는 왕실 현대화를 통해 지지를 공고히 하고 영연방을 결속하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시한폭탄 같은 해리 왕자와의 갈등 등 왕실 가족 문제도 풀어야 한다.

◇즉위 후 8개월 안정적 평가…왕실 이미지 관리 공들여

찰스 3세는 오래 준비한 국왕답게 지난해 9월 즉위 후 안정적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 같던 여왕에 비해 인간적인 면모가 호감을 사고 있다. 왕세자 시절 겪었던 정치개입 논란과 같은 악재는 없었다.

첫 국빈 방문을 잘 소화하고, 대중을 만나는 행사에서 계란이 날아와도 흔들리지 않으며, 시크교 공동체 등을 찾아가 섞이는 모습 등이 인상적이었다.

국왕을 만난 이들은 전보다 태도가 여유로워졌다는 평을 내놓곤 한다.

그는 왕실 이미지 관리에 공을 들여서 부인 커밀라가 '왕의 배우자'(Queen Consort)에서 '왕비'(Queen)로 받아들여지게 하는 데 성공했다.

윌리엄 왕세자 부부도 바쁘게 움직이게 했다. 이들이 지방의 인도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신해 전화로 예약주문을 받는 '깜짝 이벤트'를 선보이는 등 소탈하게 일반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연일 영국 언론의 1면에 보도된다.

찰스 3세는 즉위 후 왕실 운영 효율화와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관식도 70년 전 여왕 때에 비해 규모를 확 줄였다.

또, 기독교 외 다른 종교, 영어 외 웨일스어 등 다른 언어를 포함하고, 여성, 흑인 등에게 주요 역할을 맡기는 등 다양성 가치를 포용하는 모습도 보인다.

대관식 초청 대상에서 세습 귀족은 확 줄이고 지역 사회 봉사자 등을 넣었다. 왕관과 옷 등을 재사용하는 데서 보듯이 지속가능성도 강조했다.

해리 왕자의 부인 메건 마클이 2021년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인종차별 의혹을 제기한 후에는 그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여왕의 '넘버 원 헤드걸'이자 윌리엄 왕세자의 대모라고 해도 인종차별 발언 논란이 빚어지자 가차 없이 왕궁에서 내보내는 등 이 문제에 관해 엄격한 모습을 보여줬다.

대관식을 앞두고는 처음으로 영국 왕실과 대서양 노예무역 간의 관계에 관한 조사에 적극 협조한다고 발표했다.



◇영국 최대 소프트파워…젊은층 무관심

왕실은 영국 최대 소프트파워로, 군주제 유지론자들이 가장 내세우는 점은 외교와 관광 효과다.

최근 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군주제 찬반 토론에서 한 지지자는 찰스 3세가 독일 국빈 방문에서 독일어로 연설하는 것을 듣고 독일인들이 감동하고, 독일에도 왕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면서 어느 외교관이 그런 영향력을 발휘하겠냐고 말했다.

그러자 반대 측에서는 사람들은 실제 왕실이 생기고 백성의 신분이 되기 전까지만 그런 바람을 갖는다고 받아쳤다.

그러면서 왕실이 막대한 규모의 자산을 갖고 있는데도 왕실 유지에 세금이 들어가는 점과 왕실 재정이 불투명한 점, 전쟁 결정 등을 국민의 대표가 할 수 없는 상황 등을 지적했다.

최근 온라인 설문조사 업체 유고브의 여론조사에서는 군주제 지지가 여전히 60%에 가깝다. 그러나 젊은 층에서는 관심이 뚝 떨어진다는 점이 왕실로선 불안한 대목이다.

또 영국이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는 가운데 잉글랜드의 백인이 아닌 소수민족 출신들은 왕실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여왕의 인기와 카리스마에 눌려있던 공화제 지지 목소리가 나라 안팎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리퍼블릭'은 대관식을 계기로 '내 왕이 아니다'라는 시위를 기획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외교 파워가 약해지면서 영연방의 구심력도 흔들리고 식민지 과거사에 관한 원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작년 초 카리브해 바베이도스가 공화국으로 전환했고 자메이카, 앤티가바부다 등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으며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에서도 한마디씩 나오고 있다.

◇미래 왕실 역할과 존재 의의 만들어야

지금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극도로 분열돼있고, 코로나를 거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마음속엔 대영제국의 영화가 남아있지만 현실에선 국제사회 입지가 축소돼 자꾸 자존심에 상처가 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찰스 3세는 미래 왕실의 역할과 존재 의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여왕은 영국 민족주의의 상징이면서, 영국인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 역할을 했다. 또, 제국주의 과거와 현대 탈식민지·복지국가 사이의 다리가 됐다.

이에 더해 지금 왕실이 대중의 외면을 받지 않으려면 해리 왕자와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원만하게 풀어내야 한다. 또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이 있는 앤드루 왕자와 관련해 여론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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