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英 대관식…70년전 여왕 때보다 간소화·다양성 포용
1천년 전통 뼈대 유지…대관식 의자 앉아 무게 2㎏ 왕관 쓴다
참석 규모 8천여명→2천여명…확 짧아진 황금마차 행렬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은 1천여년 전통에 따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경건하면서도 화려하게 치러진다.
찰스 3세는 다음 달 6일 오전 11시 개최되는 대관식에서 왕관을 쓰고 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군주가 됐음을 선포한다.
70년 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 비하면 간소화되고 다양성·지속가능성 등의 현대 가치가 반영됐다.
◇ 대관식 의자에 앉아 왕관 쓰다…황금마차 타고 행렬
대관식 당일 일정은 찰스 3세 국왕 부부가 탄 마차가 버킹엄궁에서 출발하는 '왕의 행렬'로 시작한다.
왕실은 아직 대관식 세부 내용을 다 밝히지 않았으나 역대 대관식의 기본적인 틀은 유지될 것으로 알려졌다.
첫 순서는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캔터베리 대주교가 국왕을 소개하며 승인(Recognition)을 요청하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신이여 국왕을 보호하소서'(God Save the King)를 외치며 답한다.
다음은 전통에 따라 서약(Oath), 성유 바르기(Anointing), 왕관 쓰기, 오마주(Homage·경의 표시) 순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군주로서 신에게 약속하는 '서약'을 하고 나면 대주교가 대관식 의자에 앉은 국왕의 머리, 손, 가슴에 성유를 바른다. 이는 신과 국왕 사이의 시간으로, 가장 신성한 의식으로 여겨진다.
이어 국왕이 보주(orb)와 홀(笏·scepter) 등 왕을 상징하는 물품(레갈리아)을 들고 있으면 대주교가 머리에 대관식 왕관(성 에드워드 왕관)을 씌워준다.
국왕은 왕좌로 자리를 옮기고 성직자, 왕족, 귀족 등이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한다.
커밀라 왕비도 이보다 간소하지만 비슷한 절차를 밟는다.
약 1시간에 걸친 대관식이 끝나면 국왕 부부는 '황금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으로 돌아온다. '대관식 행렬'은 영국과 영연방 군인 약 4천명으로 구성되며 왕족들도 참여한다.
이후 국왕 부부 등은 버킹엄궁 발코니에 나와 인사를 한다.
◇ 무게 2.23㎏ 보석 444개 박힌 대관식 왕관…700년 된 대관식 의자
1066년 윌리엄 1세 이래 영국의 군주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찰스 3세는 무게 2.23㎏에 보석 444개가 박힌 대관식 왕관(성 에드워드 왕관)을 쓴다. 1661년 찰스 2세 대관식 때 처음 사용됐으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같은 왕관을 썼다.
그러나 너무 무겁기 때문에 '대관식 행렬' 때는 무게 1㎏ 제국 왕관으로 바꿔 쓴다.
커밀라 왕비는 1911년 메리 왕비가 대관식 때 쓴 왕관을 재사용한다. 20세기 이후 왕비들이 대관식에서 착용한 인도 식민지 '피눈물'의 상징인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는 달지 않는다.
대관식 의자는 1300년 에드워드 1세 지시로 제작된 것으로, 의자 아래에는 고대 스코틀랜드 왕권을 상징하는 '운명의 돌'(Stone of Destiny)이 들어간다.
무게 150㎏의 거대한 '운명의 돌'은 1296년 스코틀랜드에서 전리품으로 가져온 것이며, 평소엔 에든버러성에 보관된다.
대관식 레갈리아 중 홀은 속세의 힘을 상징하는 십자가 홀과 영적 역할을 뜻하는 비둘기 홀 두 가지다. 십자가 홀은 찰스 2세 이후 대관식에 늘 쓰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투명 다이아몬드인 '컬리넌Ⅰ'이 박혀있다.
왕의 오른손에 놓일 보주는 군주의 힘과 기독교 세계를 상징하며, 17세기에 금으로 제작됐다.
황금마차는 나무에 금박을 입혀 만든 것으로, 예술작품에 가깝다. 1831년부터 대관식 때마다 사용됐으며, 무게가 4t(톤)에 달해서 왕실 회색 말 8필이 끌며 걷는 속도로만 움직일 수 있다.
황금마차는 승차감이 너무 불편하기 때문에 70대 중반의 국왕 부부는 '왕의 행렬' 때는 2012년에 제작한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대관식 후에만 황금마차로 갈아 탄다.
◇70년 전 여왕 때보다 간소하고 현대적으로, "여러 종교 수호" 흑인.여성 등도 '등장'
1953년 6월 2일 성대하게 치러진 젊은 새 여왕의 대관식은 대영제국의 영화가 사그라드는 것을 목도하며 전후 내핍을 견디던 영국인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주고 대외적으로는 영국의 위상을 알린 행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약 3시간 진행된 대관식에 국내외에서 8천여명이 초청됐고 이 중 영국 귀족이 910명에 달했다.
여왕은 대관식에 갈 때는 템스강 옆을 따라 2.6㎞를 달리고, 버킹엄궁으로 돌아올 때는 피커딜리, 리젠트 거리, 옥스퍼드 거리 등을 거치며 8㎞를 2시간 동안 행진했다. 행렬에 군인 3만명이 참가했고 영국인 약 300만명이 길거리로 나와 여왕을 환영했다.
그러나 찰스 3세는 물가 급등 등으로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참석자를 2천여명으로 확 줄였다.
또, '코로나19 영웅'과 지역사회 봉사자 등 대영제국 훈장 수훈자 400명, 국왕의 사회복지 사업과 관련된 청년 450명을 초청했다.
찰스 3세의 행렬은 버킹엄궁∼더 몰(1㎞ 길이 도로)∼트래펄가 광장∼정부중앙청사(화이트홀) 앞 도로∼웨스트민스터 사원 2.1㎞ 구간 약 30분 거리 왕복으로 짧아졌다. 행렬에는 군인 4천여명이 참가한다.
'서약' 의식에서는 다문화 사회인 현대 영국의 모습을 반영, 영국 국교회뿐 아니라 여러 종교를 수호한다는 내용이 언급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또 대관식에 가장 먼저 입장하는 성직자 행렬에는 국교회 외에 무슬림, 힌두, 시크, 유대교에서도 동참한다.
대관식 물품을 옮기는 역할을 하는 이들의 구성도 달라진다. 70년 전에는 모두 백인이고 대부분 귀족 남성이었으나, 찰스 3세 대관식에는 여성, 흑인, 사회에 기여한 이들의 이름이 많이 올랐다.
국왕의 비둘기 홀은 윈드러시 기념 위원회를 이끄는 흑인 여성 플로라 벤저민 남작이 맡는다. 윈드러시는 2차대전 후 영국의 노동력 부족 해소를 위해 초청받아 이주한 카리브해 출신들을 뜻한다. '헌납의 검'은 처음으로 여성 군인이 든다.
성유를 바르는 의식은 이번에도 공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왕 때는 TV로 생중계하면서도 이 장면은 윗면이 막힌 캐노피(천막)로 가렸다.
찰스 3세는 3면이 가려지는 스크린을 사용한다. 스크린에는 영연방을 상징하는 나무가 새겨졌다.
성유는 예루살렘과 찰스 3세의 친할머니가 묻힌 수도원에서 난 올리브로 만들었으며, 동물 성분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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