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대책 "늦었지만 최선의 대응"…지원대상 놓고 논란도(종합)
'사기' 여부 판단 쉽지않아…무자본 갭투자 피해자 등과 형평성 문제
빌라 등 역전세난 심화, 임차인 피해 늘 수도…특별법 혜택 없는 '사각지대'
내달 1일부터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기준도 강화…"임대인 자율 반환 도와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김치연 기자 = 정부가 2년 한시 특별법으로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늦었지만 최선의 대응"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사인 간 계약에서 발생한 피해를 정부가 보상해줄 수는 없지만, 임차인 지원으로 최소한 '임대차 2법'을 포함한 정부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일부 떠안아주는 측면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전셋값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과 집주인의' 무자본 갭투자' 실패로 인한 임차인의 피해는 지원 대상이 아니고, 다른 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책도 없어 형평성 논란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
◇ "임차인 보호 긍정적"…지원 대상 명확히 해야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27일 특별법으로 전세사기 피해 경매 주택에 대해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저리 대출과 임대주택 지원 등에 나서기로 한 것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사기 피해자 입장에선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전세 제도는 민간·사인 간의 계약이어서 정부가 직접 피해금을 물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이번 정부 대책이 전세사기 재발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우선 매수 후 저가 임대 등을 통해 피해자들의 주거 안정에는 일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특별법을 통해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해 정부의 지원 범위를 명확히 하고, 최소한 임차인이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도록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본다"며 "LH가 매입한 주택에 기존보다 싼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임차인의 피해액도 어느 정도 상쇄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특별법에서 전세사기 지원 대상 요건을 6가지로 정했는데, 그 기준이 까다로우면서도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시행령에서 피해 전세금 규모나 면적(3억원, 전용면적 85㎡ 이하) 등을 명확히 하기로 했지만, '전세사기' 여부를 가려내는 단계에서는 여전히 혼란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전세사기로 보려면 집주인의 의도성이 중요한데, 단순 전셋값 하락에 따른 역전세난 및 갭투자 실패와 구분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경기 화성 동탄 오피스텔 전세사기 피해 의심 사례로 신고된 경우는 임대인 부부가 세금 문제로 파산 절차를 진행하게 됐다며 임차인들에게 "오피스텔 소유권 이전 등기를 해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 등으로 볼 때 계획된 전세사기로 판단할 수 있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집주인이 애초 사기 의도가 없었더라도 임차인이 피해액 반한 등을 목적으로 임대인을 사기죄로 고소·고발하는 경우 전세사기 피해자로 판단할지 여부도 애매하다.
지지옥션 이주현 선임연구원은 "최소한 앞서 드러난 '빌라왕'이나 '건축왕' 사례처럼 '바지사장'을 앞세워 조직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수사가 진행 중인 경우는 명확한 전세사기로 볼 수 있지만, 전셋값 하락으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모두 사기로 보긴 어려울 것"이라며 "특별법은 앞서 빌라왕이나 건축왕 피해자들의 구제책으로 보이고, 앞으로 불거지는 전세사기에 준하는 피해 건은 특별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도시와경제 송승현 대표도 "정부가 이번 특별법 대상자를 6가지로 정했지만 이를 필터링하는 과정이 중요할 것으로 본다"며 "자칫하면 역전세난으로 인한 피해자는 혜택을 받고, 정작 전세사기 피해자는 혜택을 못 받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앞으로 국토교통부 내 설치될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의에서 구체적인 전세 사기 여부나 우선매수권 행사 대상 주택 등을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도 주관적 판단 기준이 작용할 수밖에 없어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송승현 대표는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해도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주고 지원해준다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다른 범죄 사기 등에 사회적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며 "문제 있는 집에 들어갔다가 잘못되면 정부가 책임져준다는 식의 모럴해저드도 우려된다"고 했다.
전세 피해자 입장에선 우선매수권과 LH 임대로 거주권은 보장해주지만 피해 보증금을 보전해주는 것은 아니어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 '전세사기' 낙인찍힌 빌라, 내달부터 보증가입도 어려워…피해 확산 우려
전세사기 피해자의 구제방안은 마련됐지만, 역전세난으로 인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임차인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빌라나 오피스텔 등 집값 하락기에 취약한 주거 형태에서 깡통전세가 속출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한 서울 주택 전셋값에 따르면 지난 2020년 8월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4년 치 전셋값을 한꺼번에 올리려는 임대인으로 인해 법 시행 이후부터 2021년 말까지 전셋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정부가 유동성 관리를 위해 전세자금 대출을 옥죄고, 금리를 인상하면서 전세자금 대출 금리가 5∼6%대로 크게 오르자 전셋값이 급락했고, 전국 곳곳에서 집주인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21년 하반기 최고점에 계약된 전세 만기가 돌아와 2년 뒤인 올해 하반기에 재계약이 이뤄지면서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집값 하락기에 더욱 취약한 빌라(연립주택·다세대)나 오피스텔은 최근 '전세사기' 꼬리표까지 붙게 되면서 역전세난이 더욱 심화하는 형국이다.
일부 다세대나 오피스텔은 전셋값이 집값보다 높은 '깡통주택' 우려도 현실화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이곳이 전세사기 지역으로 낙인찍히다 보니 전세를 찾는 세입자가 눈에 띄게 줄어서 전세 보증금 반환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당장은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 세입자가 문제지만, 조금 지나면 전세금을 못 돌려줘 파산하는 집주인들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 역전세난으로 보증금을 못받을 경우는 정부 지원 대책에서도 제외돼 세입자의 답답함은 지속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다음 달 1일부터 전세보증금과 근저당 설정액(채권최고액)이 집값의 90% 이하인 주택에 대해서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할 수 있게 되면서 전세가율이 높은 빌라의 경우 보증 가입이 어려운 주택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보증보험은 전세 세입자의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데, 인천 건축왕 사례처럼 보증 가입을 못한 빌라 임차인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전세 보증금이 높은 경우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높여야 보증 가입이 가능하게 된다.
한 빌라 임대사업자는 "올해 집값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도 크게 하락하면서 보증한도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역전세난으로 전세 보증금 반환이 어려운데 한꺼번에 3∼4건씩 반환 요구가 들어오면 집주인은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서구 화곡동의 또 다른 중개업소 대표는 "최근 빌라는 전세사기 우려로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 가입돼 있지 않으면 임차인이 들어오려고 하지 않아서 전세 놓기 어렵다"며 "기존 세입자에 보증을 못돌려주는 역전세난의 피해가 커질 수 있는데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게 돼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사인 간 계약에 의한 피해까지 정부가 모두 구제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R114 여경희 수석연구원은 "전셋값이 오를 때도 있고 떨어질 때도 있는데 일시적인 역전세난으로 인한 세입자의 피해까지 정부가 보상하고 책임져주긴 어려울 것"이라며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을 스스로 반환할 수 있도록 임대인에 대한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을 저리로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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