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넌'…말씨까지 똑같은 AI에 생계 위협받는 성우들
문자-음성 변환 사이트, 목소리 샘플 수집해 '오디오북' 등에 활용
美저작권법, 목소리 저작권 보호 '구멍'…AI 대응 부실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텍스트, 이미지, 음성을 넘나드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달이 '목소리'로 먹고 사는 성우들의 활동 영역까지 위협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아일랜드 성우 레미 미셸 클라크는 올해 1월 한 문자-음성 변환 웹사이트에서 '올리비아'라는 가상의 인물이 자신과 똑같은 말씨와 목소리를 내는 걸 발견했다.
이 웹사이트는 올리비아가 '오디오북'에 최적화한 깊고 차분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올리비아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본 클라크는 WP에 "당신의 목소리가 바뀌고 조작된 것을 보는 건 너무 기괴한 일"이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생성형 AI 프로그램이 섬뜩할 정도의 정확도로 사람의 목소리를 구현해 내면서, 오디오북이나 비디오 게임, 광고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성우들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목소리는 알려졌지만, 그에 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없기 때문이다.
WP는 AI가 만들어내는 음성, 텍스트 등은 저작권 조항에서 다뤄진 적이 없어 성우들이 법적 보호를 받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회사와 성우 간 계약 체결 시 사측이 성우의 목소리를 제한 없이 활용할 수 있고 심지어 제3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는 조항을 눈에 띄지 않는 깨알 글씨로 넣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WP는 덧붙였다.
실제 클라크의 목소리를 복제한 음성 변환 사이트의 개발자 닐 쓰로드는 WP에 "클라크의 목소리 샘플에 무제한 접근이 가능하도록 마이크로소프트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그의 목소리를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클라크는 마이크로소프트 검색 엔진 '빙'의 아일랜드 버전을 녹음했다.
해당 사이트 측은 WP가 취재에 나선 지 몇 시간 만에 클라크의 목소리를 삭제한다고 알려왔다. 다만 쓰로드는 WP에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는 클라크가 처한 상황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
성우들은 사람들이 AI로 손쉽게 원하는 목소리를 얻는 미래가 온다면 현재 직업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클라크 역시 "회사 입장에서 한 달에 27달러만 내면 사이트에서 실제와 같은 목소리를 쓸 수 있는데 뭣 하러 30초 녹음에 2천 달러를 지불하겠느냐"고 말했다.
클라크는 해당 사이트가 자신의 목소리를 삭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제3의 사이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판매'될 가능성이 사라진 건 아니라고 걱정했다.
성우들이 AI로 인해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지만, 그들이 의지할 곳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WP는 미국 저작권법이 유명인들의 권리 보호에 집중돼 있을 뿐 개인의 목소리가 수익성을 위해 복제되는 경우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대니얼 저베이스 밴더빌트대 로스쿨 교수는 WP에 "미국 법은 목소리가 자산인 사람들에게 별다른 보호막이 되지 않는다"며 "연방 저작권법은 개인의 목소리를 보호하지 않고 있고, 지역 법도 주마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저베이스 교수는 유럽의 경우 녹음 저작권을 얻기가 더 쉽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면 원작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럽연합(EU) 역시 AI의 위협을 세분화하는 법을 제안할 정도로 AI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 "미국과 유럽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성우들 사이에선 법적 보호가 취약한 만큼 회사들과 계약서를 쓸 때 세부 조항을 꼼꼼히 살피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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