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어깨너머 배웠으면서…'푸틴 편' 지키는 러 기술관료들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서 정보기술(IT) 분야 인력이 대거 국외로 나갔지만, 젊은 기술관료(전문 지식·기술을 가진 관료)들 대부분은 여전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곁을 지키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러시아의 고위 기술관료와 이들의 직속 부하들은 옛 소련 붕괴 이후 성장기를 보내고 서방 국가에서 교육받거나 경력을 쌓아 서구식 문화와 사고방식에 익숙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원령을 피해 국외로 나간 IT분야 인력들과 달리 침공 1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정부를 위해 전문성을 발휘하며 전쟁 상황에서 자국 경제를 지탱하는 데에 보탬이 되고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인 파벨 소로킨(37)이 단적인 예다. 영국 런던에서 공부하고 모건스탠리 근무한 경력이 있는 소로킨은 러시아가 석유를 통해 얻는 수익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과의 동맹 유지에 핵심 역할을 했다.
푸틴 대통령의 수석 경제고문인 막심 오레쉬킨(40)은 프랑스 은행인 크레디아그리콜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영어에도 능통하다. 그는 서방의 제재에 대비해 러시아가 유럽에 자국 통화인 루블화로 가스를 팔 수 있는 결제 시스템을 고안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알렉세이 사자노프(40) 재무 차관도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의 석유·가스 수출이 타격을 입은 가운데 관련 세수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분석가들은 이들 기술관료들이 사임하지 않는 데에는 푸틴을 지지하고 전쟁의 정당성을 인정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직업적인 기회와 경제적 안정, 국외 망명 시 불확실한 전망 등도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또 푸틴에게 의구심을 가졌더라도 일반 러시아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큰 그림 대신 정책 세부 내용에 집중하며 위안을 찾는다고 NYT는 전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서 통화정책 고문으로 일했던 알렉산드라 프로코펜고는 잔류를 택한 중간급 기술관료들 대부분이 정부로부터 위협이나 강요를 당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전쟁 발발 후 사임하고 러시아를 떠난 그는 푸틴 대통령의 '경제적 자급자족' 요구가 기술관료들의 전문지식에 프리미엄을 부여했다면서 "그들은 갈수록 푸틴의 눈에 띄고 있으며 권한이 강화됐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프로포펜코는 다만 기술관료가 전쟁에 반대해 사임하고 싶더라도 정보요원들이 인사이동을 감시하고 있어 쉽지 않으며, 관리자급이 사직을 원하는 경우 남도록 설득하거나 여권을 제출하도록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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