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도 고개 숙인 송영길…돈봉투 의혹에는 '모르쇠' 함구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22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은 한국인 교민이 운영하는 무역업체 사무실에서 열렸다.
돈봉투 의혹 정국의 한복판에 선 송 전 대표의 '입'에 정치권 안팎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기자회견 시작 한참 전부터 사무실 앞에는 취재진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쳤다. 카메라가 여러 대 길거리에 서 있자 지나가는 시민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파리에 주재하는 특파원은 물론 서울에서 출장 온 기자 등 20여명으로 가득 찬 사무실은 곳곳에 원단이 쌓여있어 통상 정치인이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장소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응접용 테이블과 의자들을 한쪽 구석으로 옮기고 나서야 송 전 대표가 입장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송 전 대표는 그 자리에서 서서 26분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송 전 대표는 예고된 시각인 현지시간 오후 4시(한국시간 오후 11시)보다 이른 3시 51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90도로 인사하면서 기자회견을 시작한 송 전 대표는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온 A4 용지 4장 분량의 기자회견문을 꺼내 10분간 읽어 내려갔고, 그 뒤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회견문 낭독에 앞서서는 5분 넘게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패한 이후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선거에서 지고 나서 외국에 나가 있으라는 권유가 많았지만 "선거법 공소시효가 끝나는 6개월을 끝까지 기다렸다"며 그동안 차도, 비서도 없이 백팩을 짊어지고 다니며 많은 시민들을 만났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 12일 한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진의가 잘 전달되지 못했다"며 "증폭되는 전당대회 금품수수 논란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전달할 필요가 있어서 기자회견을 마련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송 전 대표는 당시 인터뷰에서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의 개인적 일탈에 대해 감시, 감독 못 한 점을 죄송하다고 했는데 무책임하다는 평이 있었다"며 "1심에서 실형 4년 6개월이 선고된 날이어서 죄송하다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따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회견문을 읽어가던 송 전 대표는 "민주당은 단순한 정당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민생평화를 지키는 보루였다"는 문장을 읽을 때는 목이 메는 듯 잠깐 멈추기도 했다.
1997년 민주당 인천시당 정책실장으로 입당한 후 26년간 '사랑하는 민주당'을 떠난 적이 없다면서 당 대표 시절 부동산 논란이 일었던 의원들에게 요구했던 대로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운동권 친구'인 우상호 의원들 당시 의원들에게 '가혹한 요구'를 했다며 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송 전 대표는 당내 따가운 여론을 의식한 듯 "민주당은 저의 탈당을 계기로 모든 사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적극적이고 자신있게 대응, 국민의 희망으로 더욱 발전해가기를 기원한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거듭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당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정치적 명예회복을 다짐했다.
송 전 대표는 검찰 수사에 당당히 응하겠다고 했지만 돈 봉투 의혹에 대해서는 '모르쇠' 입장을 되풀이하며 "돌아가서 하나하나 점검하도록 하겠다"고 함구했다.
전대 당시 빼곡한 일정상 "캠프의 일을 일일이 챙기기 어려웠던 사정이었다"고 했고, 윤관석, 이성만 의원 등으로부터 보고 받은 기억도 전혀 없다고 했다.
또한 당시 전대 판세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여론조사에 계속 앞서 있었고, 그래서 나머지 두 후보 분이 후보 단일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상황이었다"고 강조했다.
송 전 대표는 지난주만 해도 검찰 수사에 대해 "정치적 수사"라고 반발했지만, 이날은 '정치 탄압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할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저의 책임을 국민 앞에 토론하고 사죄하는 자리다. 그 문제는 오늘 발언하지 않겠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에 대한 1심 선고 전날 "검찰이 이것을 기다렸다는 듯 민주당 전당대회 때 저를 도와준 9명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송 전 대표는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방문 교수 겸 선임연구원으로 계약을 맺은 파리경영대학원(ESCP) 관계자 등과 면담을 하고 23일 오후 8시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출국하고 다시 파리로 돌아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 송 전 대표는 기자회견에 앞서 바닥에 벗어놨던 코트와 머플러를 주섬주섬 챙기면서 "모르겠다"고 답한 뒤 사무실을 나갔다.
평소처럼 이날도 백팩을 메고 등장한 송 전 대표는 기자회견이 열린 사무실까지 대중교통을 타고 왔고, 기자회견을 마치고 떠날 때도 걸어서 혼자 이동했다.
송 전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하면서 "파리에 살면서 아내도, 비서도 없이 홀로 생활하고 있어 혼자 기자회견을 진행하게 된 점을 양해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