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사회초년병의 허세…과거 대형 유출사태와는 달랐다

입력 2023-04-14 12:22
수정 2023-04-14 13:39
철부지 사회초년병의 허세…과거 대형 유출사태와는 달랐다

테세이라 '자기과시' vs 스노든·매닝 '미국 부조리 폭로'

'우크라전 직격' 시의성·파장은 테세이라 문건이 압도적 평가도

도·감청 외교파장 공통점…미 동맹국 반발에 미묘한 차이도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큰 논란을 초래한 미국의 최근 기밀유출 사태는 과거 사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밀 정보의 유출 의도가 다를 뿐만 아니라 시의성과 향후 파장에도 차이가 있다는 게 안보 전문가들의 견해다.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에 따르면 이번 기밀유출 범행의 동기는 사회 초년병의 '허세'로 귀결되고 있다.

체포된 기밀유출 용의자인 잭 테세이라(21)는 미국 공군 주방위군에 2019년 9월 입대한 일병으로, 통신망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아 왔다.

테세이라는 자신이 운영하는 디스코드 대화방의 운영자로서 어린 10대 회원들에게 고급 정보를 뿌려 선지자처럼 추앙받았다.

기밀은 대화방 회원 20여명을 상대로 그렇게 골목대장 놀이를 즐기던 과정에 밖으로 유출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에 반해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2013년 국가 기밀을 유출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확신범'이었다.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감시 프로그램 '프리즘'(PRISM)을 통해 자국민의 개인정보를 무차별 수집한다고 폭로했다.

이는 디지털 시대가 완연해지면서 발달한 기술, 정부의 빅브러더식 감시체계가 몰고 온 사생활 침해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종이었다.

육군 일병이던 브래들리 매닝이 2010년 미국 국방부 전산망에서 기밀을 빼돌려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에 보낸 사건도 있었다.

매닝도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 등에서 드러난 미국 우선주의에 분노해 기밀을 유출한 만큼 테세이라와 차별화된다.



테세이라가 폭로한 문건은 100여건 정도로 대부분 우크라이나 전쟁에 국한됐다는 점에서 광범위한 정보가 대량으로 공개된 다른 문건 유출 사태와 차이점이 부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에 유출된 문건은 현재 세계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근접한 시점에서 다뤘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파급력이 폭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NYT는 한국 포탄 33만발의 운송 일정표, 우크라이나 방공망 지도 등은 40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한 관리는 "2급 비밀이나 1급 비밀 문건이 '싱싱하다'는 얘기는 향후 작전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다"라며 "그 때문에 노출의 타격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는 스노든이나 매닝의 문건과 달리 테세이라 문건은 실질적인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을 높여 주목된다.

이를테면 테세이라 문건에서는 우크라이나군의 작전을 위해 미국이 적시에 제공한 정보와 물자 등 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는 우크라이나 동부, 남부에서 치러지고 있는 전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러시아군으로서는 그간 자국군을 들여다본 미국의 정보망이 노출된 까닭에 역으로 이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미국 정보당국의 한 고위관리는 NYT에 "악몽 같은 사태"라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실버라도 정책연구소의 드미트리 알페로비치 대표는 "러시아군이 자국군 작전 계획을 미국이 어떻게 수집하는지 알게 될 수 있다"며 "여러 방식으로 타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테세이라 문건은 미국이 하루하루 우크라이나군을 지원하며 전쟁에 얼마나 깊이 개입하는지 보여주는 물증인 까닭에 확전 불쏘시개가 될 수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와 직접 충돌하면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그 때문에 나토 동맹국이 아닌 우크라이나에 나토군을 파병하지 않고 무기도 본토 공격에 사용되지 않도록 지원에 제한을 뒀다.

미국과 동맹국의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교적 파장을 보면 테세이라 사태와 과거 사태가 유사한 면도 있다.

스노든은 NSA가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동맹국 정상들도 감시하고 있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매닝 사태 초기에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은 "이제 아무도 미국 외교관들에게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테세이라 문건에도 외국 정부에 대한 도·감청을 통해 수집된 것으로 의심되는 불편한 정보들이 포함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나 한국 고위관리들을 비롯한 동맹국 인사들에 대한 정보에 '신호정보' 표식이 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스노든 사태 때보다는 미국 동맹국들의 반발 방식이 덜 거칠다는 점이 차이점으로 관측되기도 한다.

NYT는 "2013년과 달리 미국 동맹국들이 명백한 스파이 활동을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집트, 이스라엘, 한국, 아랍에미리트(UAE) 정부는 자신들의 내부 논의 내용을 담은 유출 문건을 가짜이거나 조작됐다고 평가하지만 감시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또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스노든의 폭로 때 독일에서는 CIA 지국장이 쫓겨나고 수도 베를린에서 시민 수천명의 항의시위가 열렸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했고 프랑스는 미국 대사를 초치했으며 브라질 대통령은 미국 방문을 전격 취소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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