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양곡법 정면충돌, 목표는 같다면서 합리적 해결이 그렇게 어렵나
(서울=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법률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고 2016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이후로는 약 7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개정안에 대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농정 목표에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의결할 경우 개정안이 법률로 최종 확정되지만, 의석 분포상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국회 권력과 행정부 권력이 입법 밀어붙이기와 거부권 행사로 정면충돌하면서 정국은 더욱 차갑게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 거부권은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자주 사용하는 것은 여야 협치나 국회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오죽했으면 거부권까지 행사했겠느냐는 것이다. 이유 여하를 떠나 정치권이 갈등 조정 기능을 상실한 채 대립하는 것은 국가적 불행이다.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하면 정부가 남는 쌀을 전량 매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에도 정부가 상황에 따라 재량으로 쌀을 매입할 수 있는 임의 조항이 있으나 개정안은 이를 의무 조항으로 바꿨다. 매입 규모는 초과 생산량 전체로, 가격은 최저가가 아닌 시장가로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잖아도 가격 안정을 위해 해마다 수십만t의 쌀을 시장에서 격리하는 상황에서 초과 생산량을 무제한 사들이도록 법적으로 강제할 경우 과잉 생산 구조를 고착시켜 결국 모두에게 손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쌀 매입에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면 대체 작물 장려, 스마트팜 지원, 청년 농업인 육성 등 농업의 구조조정과 농촌 선진화에 필요한 재정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쌀은 기계화 비율이 높아 타 작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배가 용이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판로와 가격까지 확실해질 경우 벼 경작 면적은 더 늘어날 것이다. 쌀 소비가 꾸준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생산량이 오히려 증가하면 정부의 시장 격리 물량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고 가격 하락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정부는 개정안이 결국 농민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대체 작물 재배에 대한 유인이 감소해 식량 안보까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쌀은 초과 생산이 걱정이지만 국내 식량자급률은 2020년 기준으로 45.8%, 곡물자급률은 20.2%에 머물고 있다.
민주당은 재의결이 여의치 않을 경우 추가 입법을 통해 양곡법 취지를 관철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윤 대통령이 또 거부권을 행사하는 상황이 되풀이될 공산이 있다. 이런 소모적 과정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의 본령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논의의 중심에 과연 농민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여야 모두 농민들의 생활 안정과 식량 안보를 얘기하고 있으나 이를 위한 실천 방안은 극명히 갈리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목표는 같다면서 합리적 해법을 찾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우선 입법을 밀어붙이는 민주당은 일견 타당해 보이는 정부의 우려에 납득할 만한 반론을 제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개정안이 당장은 벼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농민과 농촌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닌지, 전임 문재인 정부 때 이런 법안을 만들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국민의힘도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농촌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할 대안은 무엇인지, 현실로 다가오는 식량 무기화에 대처할 복안은 있는지 책임 있는 설명을 내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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