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고위 외교관 "군주제 폐지 시간문제…영국과 관계는 무탈"
공화제 전환 움직임 거세…최근 지폐서 엘리자베스 英 여왕 얼굴 지우기도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삼는 호주가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호주 외교 관계자의 발언이 나왔다.
3일(현지시간) 영국 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스티븐 스미스(67) 신임 영국 주재 호주 연방 고등판무관은 최근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언급하고 "호주의 군주제 폐지는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호주에는 군주제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이 존재한다"면서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것(군주제 폐지)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앞으로 군주제 폐지가 호주에서 어떠한 수순을 밟을지는 전적으로 호주 정부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영국인들이 호주가 군주제를 폐지하는 것엔 '무관심'할 것이라며, 이로 인해 양국의 관계가 훼손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군주제 폐지를 주장해온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에는 호주의 공화제 전환을 지지하는 인물들이 대거 입각해 있다.
실제로 정부는 군주제의 색채를 지우기 위한 절차를 하나씩 밟아 나가고 있다.
호주 중앙은행 RBA는 지난 2월 연방정부와 협의 끝에 기존의 5달러 지폐에 그려져 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를 원주민의 예술 작품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앨버니지 총리는 지난달 원주민을 대변하는 헌법기구 설립을 위한 국민투표 문구를 공개했다. 그는 발표 현장에서 감정이 벅차올라 목이 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올해 10∼12월 진행될 국민투표가 통과되면 헌법상 원주민의 존재가 인정되고 연방의회에서 원주민 관련 정책 등에 의견을 낼 수 있는 헌법 기구가 설립된다.
호주 퍼스 출신인 스미스 고등판무관은 1979년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 런던정경대(LSE)에서 공부했다.
이후 그는 호주로 돌아가 노동당 소속으로 퍼스 하원의원을 지냈으며, 2007∼2014년 외교장관과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올해 1월 영국 주재 호주 고등판무관으로 임명됐다. 고등판무관은 영연방 국가간 대사 역할을 하는 외교사절로, 타국의 외교 대사와 거의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
영연방의 강력한 구심점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작년 9월 서거하면서 일부 영연방 국가들 사이에서 공화국 전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분석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1901년에 영국에서 독립한 호주는 여왕에 대한 호주인들의 존경과 애정 때문에 군주제를 유지해왔지만, 그의 서거로 군주제에 대한 지지 목소리가 사그라들고 있다.
다만 앨버니지 총리는 다음 달 6일로 예정된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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