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 탈선사고 전 선로이상 알았지만…엉뚱한 곳에서 육안점검만(종합)
높은 기온에 선로변형…보고 과정서 점검 대상 위치 잘못 전달돼
국토부 "안전 체계 근본부터 개선"…열차 관제 체계 일원화 추진
(서울=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 지난해 대전조차장역 인근에서 SRT 열차 탈선 사고가 발생하기 전 이미 선로 이상이 발견됐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전에 통제나 보수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던 만큼 안전불감증이 낳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지난해 7월 1일 오후 3시 20분께 경부고속선 상행선 대전조차장역 인근에서 발생한 SRT 고속열차 궤도이탈 사고 조사 결과를 3일 발표했다.
사고 열차는 선로변형 발생지점을 약 98㎞/h의 속도로 통과하던 중 궤도를 이탈했고, 승객 11명이 다쳤다.
조사 결과 일반선과 고속전용선을 잇는 중계레일 부분에 좌굴(레일이 팽창해 횡 방향으로 급격히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 발생한 후 여러 대의 열차가 통과하면서 선로변형이 확대됐다.
중계레일은 일반레일보다 도상 침하와 뜬 침목 발생 가능성이 높고, 궤도 강성의 차이로 레일 표면이 큰 힘을 받게 되는 등 구조적인 취약점이 있다.
구조적으로 취약한 데다, 높은 기온에 레일 온도가 섭씨 50도 이상으로 상승하면서 궤도 뒤틀림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 당일에는 폭염주의보가 발효될 정도로 기온이 높았다.
사고 발생 약 1시간 전 선행 열차(KTX) 기장이 선로변형을 발견했지만, 관계자의 보고체계 미준수, 불명확한 점검 위치 통보 등으로 적절한 보수가 이뤄지지 않았다.
1번선(경부선)에 문제가 있다는 기장의 최초 보고는 2번선(호남선)에 문제가 있다고 잘못 전달돼 사고 이전 2번선에서만 육안 점검이 이뤄졌다.
당시 시설 직원이 이상이 보고된 분기기 주변 점검을 위한 선로 진입을 요청했지만, 로컬관제를 담당하는 운전팀장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선로 밖에서의 육안 점검만 허가했다.
사조위는 선로에 대한 하절기·일상 순회 점검 등을 적정하게 시행하지 않는 등 선로 유지관리도 미흡했다고 결론 내렸다.
사조위는 유사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SR, 국가철도공단에 9건의 '안전 권고'를 했다.
코레일에는 중계레일이 설치된 1천767곳의 구조적인 취약점을 보완하고 취약 개소로 지정해 관리할 것을 권고했다.
사조위는 코레일과 SR에 선로 변형 발견·감지 시 긴급 정차 판단 기준을 마련하고, 관련 규정 및 매뉴얼을 보완해 교육·훈련을 시행하도록 했다.
국가철도공단에는 중계레일의 구조적인 취약점을 개선하거나 보완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라고 요구했다.
국토교통부는 중계레일 교체, 선로 유지관리지침 개정, 관계자 행정처분을 선제적으로 추진하고 철도 관제와 유지보수 등 안전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선행 열차 기장의 선로 이상 보고가 관제사, 철도공사 본사 운영상황실 기술지원팀장, 시설사령 등 복잡한 보고 과정을 거치면서 점검 대상 위치가 잘못 전달됐다고 분석했다.
국토부는 로컬관제(역)·중앙관제(구로)·운영상황실(본사)로 분산된 관제 체계를 중앙관제로 일원화해 단순·명확한 보고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아울러 시설 직원의 점검을 위한 선로 진입을 로컬관제가 반려한 것을 두고는 긴급 안전조치보다 열차 운행이 우선한다는 인식과 관행이 기저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선로 이상 징후 발견 시 시설 직원의 판단에 따라 열차 운행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은 "현재 진행 중인 철도안전 체계 개편 과정에 사조위 조사 결과를 반영하겠다"며 "개선 권고사항도 차질 없이 이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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